[단독] “文대통령이 공정사회를…” 끝까지 뻔뻔했던 ‘박사’

입력 2020-03-24 04:02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핵심 인물 ‘박사’ 조주빈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지난 9일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 남긴 메시지. 텔레그램 화면 캡처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하며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 유포했던 조주빈(25)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체포 직전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정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등 뻔뻔함을 드러냈다. 국민일보는 이번 사건이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잔혹하고도 중대한 범죄라고 판단해 피의자의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미 구속돼 범죄 사실에 대한 근거가 있는 만큼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효과도 고려한 것이다.

2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조씨는 지난 9일 이른바 ‘박사방’에서 파생된 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본보 기사 일부를 캡처해 “이런 XX 기자의 취향이 담긴 망상 글에 국민이 속을 것을 생각하니 무력감에 넋이 나간다”며 “문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만들어주실 것이라 믿는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또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날은 국민일보가 텔레그램 n번방과 박사방 등을 6개월 넘게 추척한 기사를 처음 보도한 날이다. 특별취재팀은 대화방에 참여한 복수의 제보자가 이 사용자를 조씨로 지목했고, 또 조씨가 그동안 ‘단 하나의 별’이라는 프로필을 사용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사용자가 조씨임을 확신했다. 미성년자 16명을 포함 여성 74명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만들고 유포한 조씨는 지난 16일 경찰에 검거됐고, 19일 구속됐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n번방 이용자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었다. n번방에서 파생된 또 다른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는 지난 22일에도 4100여명이 남아 있었다. 한 사용자가 대화창에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음어) 헤프게 쓰니 갓갓 같은 새끼에게도 낚이는 것”이라고 말하자 다른 사용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걸 낚아서 노예를 부린 ‘갓갓’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나는 강간 8범”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갓갓’은 텔레그램에서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들고, 이를 유포하는 형태의 범죄를 처음 시작한 인물이 사용한 닉네임이다. 또 다른 단체대화방에서는 피해자의 사진을 올리며 과거 제작된 영상물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성착취물 등 부적절한 영상의 콘텐츠 ‘링크’(주소)를 남기는 한 단체대화방에서는 지난 21일 사용자들끼리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n번방·박사방 피해자 관련 조사’라는 제목의 설문조사에 2300여명이 참여했는데 ‘이게 다 문재인 탓’이라는 응답이 39%로 가장 높았고, ‘응답자 4명 가운데 1명은 (피해자가) 자초한 일’이라고 답했다. 응답자 가운데 19%만 ‘(피해자가) 불쌍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박사’ 조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좁혀오는 수사망에 대한 부담으로 일종의 자기합리화를 한 것으로 분석했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일종의 ‘도피심리’인데, 수사 압박이 심해지자 말도 안되고 논리도 없는 글을 써서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에 대해 n번방 이용자들이 동조 의지를 보이는 것은 ‘비난자에 의한 비난’ 심리라고 보는 분석도 있었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는 “n번방 가담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더 나쁘다고 생각한 이들이 먼저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에 앞서 대화방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와치맨’은 이미 지난해 구속돼 내달 1심 선고를 앞둔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닉네임 와치맨을 사용하는 전모(38·회사원)씨를 지난해 9월 구속했다. 이로써 n번방의 소위 3대 운영자 중 갓갓 외엔 모두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경북경찰청에서 갓갓의 신병을 쫓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onlinenew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