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적 약자의 위기

입력 2020-03-24 04:01

코로나19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위기는 과거에 경험했던 경제위기와 성격이 다르다. 경제위기는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인류는 이를 극복하며 성장했지만 이번과 같은 위기는 처음이다.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국가·도시 간 이동이 막히고,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되고, 스포츠 이벤트가 중단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위기이기에 정책적 대응도 신속하고 강력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신속하게 제로로 낮춘 데 이어, 4차 양적완화도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사상 최저치까지 낮췄고,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도 속속 금융완화 전선에 동참하고 있다. 각국 정부들도 재정지출을 늘리며 대응하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의 경험이 매뉴얼이 되고 있다. ‘더 신속하게, 더 강력하게.’

그럼에도 금융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건, 정부의 재정정책이건 모든 부양책의 본질은 경제주체들에게 돈을 쥐어 줘 쓰게 만드는 것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미덕인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돈을 쓰려야 쓸 수가 없다. 움직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돈을 쓴단 말인가. 일단 불안의 핵심인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 증가세 둔화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시간이 걸릴지언정 코로나19는 인류의 통제 하에 들어갈 것이고, 주식을 비롯한 자산가격도 어느 정도 반등할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경제주체, 특히 경제적 약자들이 받고 있는 타격은 복구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어떤 국가이건 경제가 고도화되면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진다. 2019년 기준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1%에 달하고, 제조업은 29%에 불과하다. 전 세계 제조업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도 서비스업 비중이 54%이고, 미국은 80%가 넘는다.

서비스업이 가진 특징은 이연수요(Pent-up demand)가 없고, 거대 자본이 투자되는 제조업에 비해 영세하다는 점이다. 제조업은 위기 때 어렵더라도, 상황이 좋아지면 업황이 회복되는 탄성이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와 가전 같은 내구재의 경우 공장 가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더라도 상황이 안정되면 조업시간을 늘려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다. 내구재의 구매 행위 역시 소비자들은 상황이 안정되면 미뤄둔 소비를 행하게 된다. 그렇지만 서비스업은 이연수요가 없다. 식당주인의 수입, 이발사의 수입, 스포츠 경기 치어리더가 입는 손실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손실은 향후 회복되기보다 그대로 확정되는 손실이다.

서비스업은 정부가 지원해주기도 어렵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회사나 거대 제조업체들을 지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단 지원할 타깃을 정하면 구제금융 형태로 지원하면 된다. 모럴 해저드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지원하는 행위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경제 곳곳에서 대마불사의 신화가 살아 있다. 이번 위기 국면에서도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에서는 어려운 대기업들에 대한 국유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거대 기업이 파산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파장이 너무도 두려운 것이다. 서비스업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들은 개별적이고,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이 입은 손실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일일이 손실을 계측해서 도와주기보다 포괄적으로 지원해주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기는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지만, 위기 이전에도 ‘항상 위기’였던 경제 주체들에게는 치명상을 준다. 영세 사업자들은 일시적 지원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결국 경제 활동 규모가 큰 플레이어들은 정부 지원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지원받기도 어려운 영세 플레이어들은 스물스물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는 언젠가는 지나가고, 부실한 대마는 연명하겠지만 경제적 약자들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