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사교육비 단상

입력 2020-03-23 04:02

최근 교육부가 ‘2019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 이슈가 상당히 많이 묻힌 느낌이 많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사안이었다.

교육부 사교육비 조사의 골자는 이렇다. 작년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 평균 32만1000원으로, 2007년 사교육비 조사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30만원을 돌파했다. 증가폭도 역대 최대였다. 사교육비 총 규모는 21조원으로 전년 대비 1조5000억원 증가했다. 1인당 사교육비도 사실 축소된 것이다. 사교육비를 아예 지출하지 않는 학부모까지 넣어 평균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내놓은 사교육 증가 원인과 해법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정말 교육부 공무원들이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구체적으로 교육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학교급별 사교육 참여율은 초등학생(83.5%), 중학생(71.4%), 고등학생(61.0%) 순이었다. 교육부는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저학년에서부터 1악기 배우기, 태권도 등 체육활동, 취미·교양 활동 등 다양한 예체능 교육에 대한 관심 및 학습 욕구가 확대된 결과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르다. 수학 과목을 예로 들면, 요즘 초등학생은 고학년이 되면 중학교 과정을 학원에서 마스터한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면 고등학교 수학 전 과정을 끝낸다. 고등학교에선 대학 수학을 학원에서 공부한다.

교육부는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 진학을 희망할수록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학교에는 기본적으로 학구열이 높고 일정 소득 이상 가구의 학생들이 지원한다. 자사고나 특목고를 없애면 과학고·영재고 등으로 수요가 쏠리면서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결국 해답은 흔들림 없는 일관된 정책 추진과 공교육 강화다. 정부는 2015년부터 대입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정권 교체, 공론화 논란 등으로 작업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고교 1~3학년이 전부 다른 대입 제도를 적용받는 상황이 빚어졌다.

공교육 부실도 문제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저 내신을 따기 위해 학교를 다닌다. 사교육 수강 목적을 보면 교과의 경우 학교수업 보충·심화(48.5%), 선행학습(22.9%), 진학 준비(15.8%), 불안심리(4.3%) 순이었다. 학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도 학생·학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과후학교 참여율은 48.4%로 전년보다 2.5% 포인트 하락했다.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의 사교육 갈증은 계속 커지고 있다. 서울 동남쪽에선 대치동 학원으로 가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서울 서부권과 인천 등에선 목동 학원이 인기라고 한다. 학교가 코로나19 여파로 4월에 개학하는 것도 사교육을 부채질할 수 있다. 사교육은 불확실성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사교육으로 관리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성적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학교는 개학을 연기했지만 서울시내 학원 10곳 중 8곳은 문을 열었다. 당연히 학부모들의 사교육 욕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반 시민들은 총선 역학구도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거창한 대명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정부가 부디 사교육비나 부동산 같은 국민 체감지수가 높은 사안들을 국정 1순위에 두고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