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성 국장 지시로 문서 조작” 유서 나와… 사학스캔들 재점화

입력 2020-03-20 04:03
‘모리토모 스캔들’에 항의하는 일본 시민들, 아베 퇴진 요구 시위. EPA연합뉴스

“모리토모 사안은 모든 게 재무성 본부 지시다. 본부가 처리 방침을 정했고 거짓에 거짓을 덧씌웠다. 본부는 도망쳤고 긴키 지부가 모든 책임을 졌다. 무섭고 무책임한 조직이다.”

일본 재무성 상부의 문서 조작 지시로 정권 실세 관련 내용을 빼는 데 가담했다가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하급 공무원의 유서와 수기가 지난 18일 주간지 ‘슈칸분슌’에 공개됐다. 이를 계기로 2017~2018년 아베 신조 정권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던 ‘모리토모 사학 스캔들’이 재점화됐다.

모리토모 스캔들은 일본 정부가 2016년 초등학교 설립을 추진하던 사학법인 모리토모학원에 오사카의 국유지 8770㎡를 감정가보다 85%나 낮은 헐값으로 팔아넘겼다는 의혹이다. 학원은 매입가 1억3400만엔(약 15억8737만원)마저도 전액 국비로 충당했다. 이 사건이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모리토모학원과 아베 총리 사이 유착관계 때문이었다. 당시 학원 이사장은 극우단체 ‘일본회의’의 임원으로 아베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와 친분이 있었다. 국유지에 들어선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아키에 여사를 위촉하기도 했다.

특혜 매각 의혹이 제기되고, 일본 재무성이 의회에 제출했던 매각 관련 문건이 조작됐다는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오면서 사건은 대형 스캔들로 번졌다. 신문은 2018년 3월 2일 자체 분석 결과 문서 원본에 있던 ‘특례’라는 문구가 여러 곳에서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아키에 여사와 집권당인 자민당 정치인 관련 내용들도 빠져 있었다. 정부기관인 재무성이 공문서를 조작한 것이다.

보도 닷새 뒤 공문서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무성 긴키 지역 국유재산관리 담당 직원 아카기 도시오(당시 54세)가 효고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재무성은 10일 문서 조작을 일부 인정했고, 12일 아베 총리의 대국민 사과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해 5월 31일 일본 검찰은 모리토모 스캔들 연루 용의자 38명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당시 사건에 직접 관여한 인물의 육성이 최초 보도되면서 2년여 만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야당은 스캔들을 다시 파헤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슈칸분슌은 “A4용지 7장 분량의 수기에는 문서를 조작하게 된 경위와 상부의 부당 지시에 고통스러워하던 하급 공무원의 심경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아카기는 수기에 “(지시에) 저항했지만 결국 조작에 관여한 자로서 어떻게 책임을 질지 계속 생각해 왔다”며 “우리 가족을 울리고 내 아내의 인생을 파괴한 건 재무성 본부 이재국”이라고 썼다. 전 재무성 이재국장 사가와 노부히사가 문서 조작을 강요한 인물로 적시됐다.

사가와로부터 처음 문서 조작 지시가 내려온 날은 2017년 2월 26일로 기록돼 있다. 아베 총리는 같은 달 17일 의회에서 “국유지 매각 과정에 나와 아내가 관여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1주일 뒤인 24일 사가와는 “정치권의 압박은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슈칸분슌은 “아베 총리의 말이 문서 조작의 전환점이 됐고, 사가와의 발언 이틀 뒤 조작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아카기의 유족은 슈칸분슌 보도가 나온 당일 일본 정부를 법원에 고소했다. 19일 아소 다로 재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재조사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야당들은 “중요한 수기가 남아 있어 재조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재조사 거부 방침에 반발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