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국제대회를 치르고 돌아온 펜싱 여자 에페 국가대표팀 선수 8명 중 3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다. 여자 에페와 현지에 함께 있었던 세부 종목 선수들도 있어 확진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국제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선수들의 감염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위기 상황에 귀국 후 여행까지 다녀온 선수와 이를 방조한 대한체육회·대한펜싱협회의 ‘안전불감증’엔 비판이 제기된다.
19일 협회와 태안군에 따르면 여자 에페 선수 C씨는 17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충남 태안의 한 펜션에 여행을 갔다. C씨는 협회로부터 대표팀 동료 A씨(25)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18일 오후 3시40분 태안군 보건의료원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받은 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C씨의 확진은 여자 에페 선수 8명 중 3번째였다. 앞서 A씨는 17일 목이 따끔거려 자택이 있는 울산의 선별진료소를 찾았다가 국가대표 선수 중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어 동료 선수 B씨(35)도 18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은 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
A·B씨와는 달리 C씨의 경우 귀국 후 자택에 머물지 않고 여행까지 다녀와 비판이 제기된다. 협회에 따르면 여자 에페 대표팀은 8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여자 에페 그랑프리에 참가한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월드컵까지 참가할 계획으로 훈련을 지속했다. 하지만 국제펜싱연맹(FIE)이 13일 모든 대회를 30일간 연기해 대표팀은 14일 부다페스트를 떠나 다음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협회는 이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가급적이면 자택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C씨는 이를 어기고 지인과 여행을 떠났다.
일탈 행위를 한 C씨도 문제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을 간과한 협회도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순 없다. 협회는 명시적으로 ‘2주 자가격리’를 명령한 적이 없다. 협회 관계자는 “공항에서까진 별 증상이 없어 감염을 상상하지 못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가급적 집에서 몸조심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라고 말한 것”이라며 “C씨도 대회 마치고 조용한 곳에서 쉬려고 한 것 같은데 비난이 이어져 안타깝다”고 밝혔다. 협회의 명령이 있었다면 개인의 일탈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선제적·명시적 조치는 없었던 것이다.
대한체육회도 안일했다. A~C씨를 비롯해 선수들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입국 직후에 받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권고사항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진천선수촌 내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입촌일과 최대한 가까운 날짜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협회는 이 지침에 따라 선수들에게 입국일(15일)이 아닌 입촌일(24일)의 1~3일 전에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안내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입국 직후에 검사를 받고 선수촌 들어올 때 또 받고 할 수는 없다”며 “선수 관리는 협회의 몫이고 저희 목표는 선수촌 안에 확산되지 않게 방지하는 거라 입촌일과 가깝게 검사를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대한체육회 차원에서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각 종목 선수들을 대상으로 입국일과 입촌일 사이 자가격리와 관련된 통일된 지침을 내린 것도 아니다. 선수 관리의 책임을 단순히 협회와 선수 개개인에게 일임한 것이다.
현재 여자 에페 선수 8명 중 3명이 양성, 2명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 여자 에페와 숙소와 훈련장을 공유한 남자 에페는 8명 중 7명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 또 같은 버스를 이용한 남자 사브르 대표팀 10명 중 3명의 선수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결국 부다페스트에 있었던 대표팀 인원 중 현재 11명에게 추가적인 감염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협회는 확진 판정 직후 다른 세부종목 선수들도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했다. 벨기에에서 15일 귀국한 여자 사브르는 10명 중 1명이 음성 판정을 받았고, 미국에서 16일 귀국한 남녀 플레뢰 4명은 아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