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펜싱협회·체육회·선수… 코로나에 찔렸다

입력 2020-03-20 04:03
한국 여자 에페 대표팀은 지난 6~8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여자 에페 펜싱 웨스트엔드 부다페스트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했다. 사진은 대회 준결승에서 한국 선수(왼쪽)와 프랑스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헝가리에서 국제대회를 치르고 돌아온 펜싱 여자 에페 국가대표팀 선수 8명 중 3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다. 여자 에페와 현지에 함께 있었던 세부 종목 선수들도 있어 확진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올림픽 출전권 획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국제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선수들의 감염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위기 상황에 귀국 후 여행까지 다녀온 선수와 이를 방조한 대한체육회·대한펜싱협회의 ‘안전불감증’엔 비판이 제기된다.

19일 협회와 태안군에 따르면 여자 에페 선수 C씨는 17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충남 태안의 한 펜션에 여행을 갔다. C씨는 협회로부터 대표팀 동료 A씨(25)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18일 오후 3시40분 태안군 보건의료원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받은 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C씨의 확진은 여자 에페 선수 8명 중 3번째였다. 앞서 A씨는 17일 목이 따끔거려 자택이 있는 울산의 선별진료소를 찾았다가 국가대표 선수 중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어 동료 선수 B씨(35)도 18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은 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

A·B씨와는 달리 C씨의 경우 귀국 후 자택에 머물지 않고 여행까지 다녀와 비판이 제기된다. 협회에 따르면 여자 에페 대표팀은 8일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여자 에페 그랑프리에 참가한 뒤 같은 장소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월드컵까지 참가할 계획으로 훈련을 지속했다. 하지만 국제펜싱연맹(FIE)이 13일 모든 대회를 30일간 연기해 대표팀은 14일 부다페스트를 떠나 다음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협회는 이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가급적이면 자택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C씨는 이를 어기고 지인과 여행을 떠났다.

일탈 행위를 한 C씨도 문제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을 간과한 협회도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순 없다. 협회는 명시적으로 ‘2주 자가격리’를 명령한 적이 없다. 협회 관계자는 “공항에서까진 별 증상이 없어 감염을 상상하지 못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가급적 집에서 몸조심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라고 말한 것”이라며 “C씨도 대회 마치고 조용한 곳에서 쉬려고 한 것 같은데 비난이 이어져 안타깝다”고 밝혔다. 협회의 명령이 있었다면 개인의 일탈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선제적·명시적 조치는 없었던 것이다.

대한체육회도 안일했다. A~C씨를 비롯해 선수들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입국 직후에 받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권고사항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진천선수촌 내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입촌일과 최대한 가까운 날짜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협회는 이 지침에 따라 선수들에게 입국일(15일)이 아닌 입촌일(24일)의 1~3일 전에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안내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입국 직후에 검사를 받고 선수촌 들어올 때 또 받고 할 수는 없다”며 “선수 관리는 협회의 몫이고 저희 목표는 선수촌 안에 확산되지 않게 방지하는 거라 입촌일과 가깝게 검사를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대한체육회 차원에서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각 종목 선수들을 대상으로 입국일과 입촌일 사이 자가격리와 관련된 통일된 지침을 내린 것도 아니다. 선수 관리의 책임을 단순히 협회와 선수 개개인에게 일임한 것이다.

현재 여자 에페 선수 8명 중 3명이 양성, 2명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 여자 에페와 숙소와 훈련장을 공유한 남자 에페는 8명 중 7명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 또 같은 버스를 이용한 남자 사브르 대표팀 10명 중 3명의 선수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결국 부다페스트에 있었던 대표팀 인원 중 현재 11명에게 추가적인 감염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협회는 확진 판정 직후 다른 세부종목 선수들도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했다. 벨기에에서 15일 귀국한 여자 사브르는 10명 중 1명이 음성 판정을 받았고, 미국에서 16일 귀국한 남녀 플레뢰 4명은 아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