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불행이 가르쳐 준 것

입력 2020-03-20 04:05

가장 불행하거나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잊지 못할 그날 밤을 떠올렸다. 20대 초반에 여동생과 함께 살던 학교 앞 자취집에 강도가 들었다. 잠을 자다가 숨이 막힐 듯 답답해서 눈을 떠보니 낯선 남자가 한 손바닥으로 내 코와 입을 막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른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그는 나의 손과 발을 묶고 여동생에게로 가서 똑같이 한 뒤, 우리의 지갑에서 돈을 챙기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러고는 경찰에 신고하면 복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창문을 통해 사라졌다.

그 사건은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나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는 다친 곳이 없었고, 눈에 보이는 피해라면 돈 몇 만원 잃은 것이 전부이긴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떨었던 그 30분 동안의 공포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가고 난 뒤의 시간이었던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잘 때도 항상 불을 켜두었다. 그는 누구일까, 무슨 동기로 어떻게 우리에게 온 걸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전혀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대비할 수도 없는 일, 불행이 나에게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의 날들을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로 안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려웠다.

그리고 외로웠다.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멀리 사는 부모님은 내가 겪은 일을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자꾸 생각하지 마. 빨리 잊어버려야지’ 하는 당부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친구도 ‘설마, 어떻게 그런 일이…’라며 놀랐지만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 못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불행과 무관한 듯 살고 있었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나의 상태를 결코 알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점차 다른 사람의 불행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길을 가다가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가 되거나, 상대방의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각종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일, 뉴스 속 사건들이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부디 잘 견뎌내기를 마음으로 빌었고, 나도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즘 전 세계가 같은 이슈 속에 있다. 누가 알았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2020년의 1분기를 이렇게 보내게 될 줄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대비할 수 없었다.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위험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외출할 때는 언제나 마스크를 챙기고, 손을 열심히 씻고 있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지, 언제쯤 이 상황이 종료될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이 불행을 받아들이고 있다. 달리 방법이 없다. 다행히 같은 경험을 통해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지혜를 모으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학습한다. 일상의 소중함도 배우고 있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일은 이 상황이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잘 견디며 지나갈 일이다. 그게 불행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시간이 흘러 내가 40대가 되는 동안 크고 작은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만났다. 의지나 노력, 바람과 무관한 일들 앞에서 때로는 휘청이고, 상처받고, 가끔은 조금 의연할 수 있었다. 이제는 20여년 전 강도 사건이 내가 겪은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은 내 안에서 시점에 따라 다른 의미와 크기를 가지므로 측정하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다.

돌아보면 행복은 행복 그 자체였지만, 불행은 여러 방식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카뮈가 말했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고.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