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요청’ SOS 뜨면 달려간다… 캐나다 3만명의 천사들

입력 2020-03-19 04:03
캐나다의 ‘도움공유’ 운동인 ‘케어몽거링’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케어몽거링 페이스북 캡처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신체적·경제적 약자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가나 사회, 이웃들로부터 제공받던 다양한 도움이 사라지면서 생존 위기에 내몰린 경우도 있다.

캐나다 핼리팩스에 거주하는 장애인 폴 비엔나(29)도 그런 경우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손소독제 대란을 누구보다 불안하게 지켜봐야 했다. 비엔나는 면역력에 이상이 있어 평소에도 손소독제를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흘 전 마지막 손소독제가 떨어져 고민하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케어몽거(Caremonger)’ 회원들이었다.

영국 BBC는 오타와, 핼리팩스, 아나폴리스 등 캐나다 여러 도시에서 ‘케어몽거링(Caremongering)’이 확산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케어몽거링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시민들의 참여로 도움을 제공하는 활동이다. 공포를 유발하는 가짜뉴스 유포를 뜻하는 ‘스케어몽거링(scaremongering)’에 맞서 도움과 돌봄을 퍼트린다는 의미로 케어몽거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케어몽거링 활동가들은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환자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해주고, 장애인 돌보미를 자처하며 지역사회를 돌보는 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들의 활동 기반은 페이스북이다. ‘그룹 생성’ 기능을 이용해 지역별로 ‘케어몽거 오타와’ 식으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 현재 캐나다에는 35개가 넘는 그룹에서 3만여명이 케어몽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능기부 형식의 봉사활동임에도 기성 봉사활동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SNS의 자유로운 가입 절차와 활동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케어몽거 그룹에선 ‘#iso(도움요청)’와 ‘#offer(도움제공)’ 두 가지로 활동이 진행된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iso’ 해시태그를 붙여 요구사항을 적어 등록하면 되고, 도움을 줄 사람들은 ‘#offer’ 해시태그 뒤에 자신이 제공할 서비스와 물품을 알리면 된다.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활동은 ‘대리 쇼핑’이다. 자가격리에 들어갔거나 감염 위험 때문에 외출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해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서 배달해주는 것이다.

문을 걸어잠그고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대신 문을 열고 나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케어몽거링은 코로나19 공포에 휩싸인 캐나다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오타와에서는 식료품이 동나 굶고 있는 미혼모와 아이를 위해 누군가 음식을 보내줬다. 토론토에서는 장애인을 위해 요리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났으며, 프린스에드워드에서는 실직자들에게 슈퍼마켓 상품권을 나눠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마스크, 화장지 등 여분의 위생물품을 나누려는 사람들, 유용한 뉴스와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케어몽거링은 미타 한스라는 여성에 의해 시작됐다. 그녀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바이러스만큼이나 유언비어가 급속하게 퍼지는 데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가짜뉴스만큼 ‘케어’도 캐나다에 널리 퍼질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전염병보다 무서운 게 바로 무력함과 소외감”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캐어몽거링은 캐나다 밖으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영국에서는 독거노인에게 비누를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스페인에서는 운동강사들이 자가격리자를 위한 무료 강습에 나섰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