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간 청도의 17일, 나를 치유했다”

입력 2020-03-19 04:05
오성훈 간호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과 싸우고 있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의료 자원봉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SNS를 통해 ‘간호사 응원 챌린지’를 진행했다. 현재 300명 이상의 네티즌이 동참했다. 오성훈 간호사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들을 그린 단편 웹툰이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간호사들이 보호복을 입으며 ‘나 지금 떨고 있니?’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 의료용 마스크와 고글 때문에 헐어버린 얼굴을 가린 일회용 반창고까지 코로나 병동 풍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림을 그린 건 2년 차 오성훈(27) 간호사다. 지금은 병원을 나와 간호인들의 고충을 웹툰으로 그리고, 그들을 돕는 회사 ‘널스노트’를 창업해 ‘간호사를 간호하는 간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러다 지난달 29일 코로나 사태 최전방인 대구·경북 의료 자원봉사를 떠났다. 오 간호사는 지난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치열한 17일간의 기록을 전했다.

‘대구·경북 코로나 병동 의료진이 부족합니다.’ 대한간호사협회 호소문을 본 오 간호사는 아내에게 ‘의료 봉사를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가 단호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혼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신혼부부였고 아내는 어린이집 교사였다. 고민하던 그는 “일단 지원서를 넣고 보자”고 결정했다. 완강히 반대하던 아내 몰래 저지른 일이다.

근무지 배치가 된 건 3일 뒤인 지난달 28일이었다. 오후 9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협회 관계자는 다음 날 오후 1시까지 청도 대남병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오 간호사는 “말하는 분도 거절을 많이 당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목소리도 떨리고 더듬거리면서 미안해했다”며 “막상 근무지를 들으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겁이 났고 솔직히 망설여졌다”고 말했다. 퇴근한 아내에게 고백했다. 아내는 말을 잃었다.

지난달 29일 도착한 청도 대남병원 인근은 마치 영화 속 세트장 같았다. 그는 “편의점 외에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더라. 물론 거리에도 사람이 없었다”며 “사람 사는 곳이 맞는지, 음산하고 고립된 분위기였다”고 했다. 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곳곳에 붙은 ‘출입금지’ 안내 문구와 어두운 표정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오 간호사는 “환자 대부분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복도에 마음대로 누워 있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며 “모든 직원과 의료진이 떡진 머리로 버티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혼 5개월 차인 오성훈 간호사가 봉사 기간 중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오성훈 간호사 제공

병동 업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됐다. 환자의 혈압·체온·맥박·호흡을 체크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이상증상 보고 후 의사 처방을 받고, 투약 조치하고, 밥때에 식사를 챙기는 것도 간호사 몫이다. 오 간호사는 “환자 연령도 높고 정신질환이 있기 때문에 바지에 대변을 보는 분들이 많았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배설물을 치워야 했다. 특히 감염 위험이 있는 것이라 심리적 두려움도 매우 컸다”고 털어놨다.

2~3일이 지나고 적응 단계가 찾아왔다. 환자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젊었을 때는 무슨 일 하셨어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으로 너무나도 따뜻했다. “벽돌 나르는 일을 했다” “아무개네 농사일을 좀 거들었다” 평범한 추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환자는 “나는 김소월이나 한용운 시를 좋아했었다”고, 또 어떤 환자는 “나훈아랑 남진이 라이벌이었는데, 난 나훈아를 더 좋아했다”고 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었다.

오 간호사는 “그분들이 다른 병원으로 향하는 날 제게 ‘그때 이야기를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꼭 다시 보자’고 하시더라”며 “이때의 기억이 힘든 저를 치유했고 무수한 오해를 풀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