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목이 말라 잠에서 깨자 거실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재봉틀로 이것저것 만들기를 즐기지만, 최근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서두르던 모습이 생각나 거실로 나갔다. “뭘 만들어?” 아내의 긴 설명이 따라붙었다. 요약하자면 헌 옷을 오려 마스크 모양을 잡는 중이란다. 여기에 온라인 주문한 필터를 넣으면 ‘수제 마스크’가 완성된다. 이 필터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란은 분분하단다. 그 효과라는 게 내 침이 밖으로 튀는 걸 막아주는 건지, 타인의 침·분비물이 내 호흡기로 침투하는 걸 막아주는 건지조차 모호하다. 이틀 걸려 겨우 하나 만들었지만, 필요할 때마다 필터를 교체하면서 계속 쓸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아내는 연신 채근을 했다. 근처 약국에서 공적 마스크 판매를 시작하니 가보라는 것이다. 줄을 서는 게 귀찮고, 공적 마스크는 더 급한 이에게 양보해야 하고, 마스크 기능을 너무 믿는다는 말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2층 약국이라 좀 덜하겠거니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마스크가 10개 남았습니다. 여기서부터 뒤에 서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돌아가셔야 합니다.” 문밖으로 나온 약사는 허리를 숙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하면 떠오르는 연관 단어는 단연 마스크다. 쌓아둔 마스크가 바닥을 보이면 불안에 빠지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괜히 멀찍이 피하게 된다고 한숨을 내쉰다. 마스크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존재가 된 뿌리는 두 가지다. 첫째는 마스크 맹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보다 100~1000배가량 높다는 코로나19의 전파 감염력이 한몫한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이고, 사스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까닭에 코로나19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라는 긴 이름도 갖는다. 감염자의 침 또는 분비물에 묻어 나온 바이러스는 일정 시간 활성화 상태로 공기 중에 둥둥 떠 있거나 사물의 표면에 붙어 있다. 기침을 하거나 호흡기 증상을 보인다면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유다. 동시에 마스크 쓰기보다 손 씻기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도 여기에 기반을 둔다. 코로나19는 높은 감염력 때문에 무증상 혹은 가벼운 증상을 보이는 ‘식별 어려운 감염자’가 많다. 이 지점에서 공포가 자라난다.
둘째는 무분별한 말들. 질병관리본부는 일관되게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증상이 없는 일반인도 마스크를 쓰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가,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말을 바꿨다.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 공간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결정타는 정치권의 수많은 말과 행동이다. 오해, 과장, 비난 등이 쌓이고 덧입혀지면서 이제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언제, 어디서 반드시 써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산책을 할 지경이다.
차츰 확산세는 무뎌지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가 고통받고 있지만, 우리는 이길 것이다. 바이러스와 기나긴 전쟁을 치러온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다만 국가적 재난에 끼어든 정치·진영 논리가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혼란을 부추겼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들에게 온전히 치료와 방역을 맡기는 게 왜 중요한지 꼭 기억해야 한다.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