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선교지 섬기자”… 주중엔 ‘떡집 카페’로 변하는 교회

입력 2020-03-19 00:05
주중엔 떡카페, 주일엔 교회가 되는 경기도 남양주 별내들풀교회 박희찬 목사가 17일 카페를 찾은 성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양주=강민석 선임기자

경기도 남양주 별내들풀교회 박희찬(50) 목사의 새벽은 남다르다. 다른 교회가 새벽예배를 드리는 시간 박 목사는 내부순환로를 타고 서울 마포구 망원동으로 향한다. 차가 막힐 때는 왕복 3시간이 걸리는데 2018년 9월부터 주일을 빼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목적지는 떡집, 그것도 서울 3대·전국 10대 떡집으로 유명한 ‘경기떡집’이다. 박 목사는 그곳에서 떡을 받아 교회로 돌아온다. 정확히 말하면 경기떡집 남양주점이다. 별내들풀교회는 주중엔 떡집 카페, 주일엔 교회가 된다.

별내들풀교회, 아니 경기떡집 남양주점을 17일 찾았다. 때가 때인지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이 줄어든 것 아니냐는 질문부터 했다.

박 목사는 “매출이 줄긴 했지만, 경기떡집은 워낙 유명해 타격이 크지는 않다”면서도 “덕분에 소상공인들의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하게 됐다. 그들의 아픔을 교회가 위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 목사가 처음부터 떡집을 운영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안양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년 59기 육군 군종 목사로 임관해 14년간 군 장병에게 복음을 전했다. 2015년 전역한 뒤 ‘선교하는 작은 교회, 쉼이 있는 가정교회’라는 목표를 갖고 별내들풀교회를 개척했다. 시작은 가정교회였다. “사람이 편한 교회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 편한 교회란 건물이나 외형 등이 잘 갖춰진 것을 의미하죠.”

박 목사의 개척 소식을 듣고 군에서 인연을 맺은 3명의 장병과 그들 가족이 함께했다.

“개척 멤버들과 함께 담임목사 정년부터 목회자 사례비까지 세세한 것까지 다 만들었어요. 그리고 선교를 위해 힘쓰자는 목표도 세웠죠. 재정 자립도 못 했는데 개척 첫날부터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2년간 박 목사의 집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한계가 찾아왔다. 한국에서 집은 주거개념이 강해 누군가의 집에 간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많았다. 예배 공간을 고민하던 그에게 개척 멤버 중 한 명이 망원동 경기떡집 2층 공간을 제시했다. 경기떡집 1대 사장인 최길선 장로의 첫째 아들 최대로씨였다. 1년간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새 공간을 찾았다. 이번엔 최씨가 카페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박 목사는 고민에 빠졌다. 목사가 장사하면 주일 예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최씨는 망원동에서 떡을 받아 팔고 음료수는 부수입 차원에서 판매하면 재정을 확보할 수 있고 목회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떡집도 박 목사에게 남양주점을 내주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떡의 품질을 위해 경기떡집은 최 장로의 네 아들이 대물림 받아 운영해 왔다. 대형 백화점 두 곳에 직영 판매점을 두고 있지만, 가족도 아닌 사람을 통해 경기떡집이 카페를 여는 건 이곳이 처음이었다.

박 목사는 경기떡집을 ‘자립형 선교 모델’로 세우기를 희망하고 있다. “선교 환경이 달라지면서 해외 선교사님들의 예배당 선교는 어려워질 것이라 봤어요. 카페 형태로 운영하면 선교 공간도 확보하고 직원에게도 선교할 수 있을 것이라 봤고 최 장로님도 공감하셨죠.”

최 장로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해 그의 사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 성도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는 모습. 별내들풀교회 제공

매장 인테리어에도 공을 들였다. 신앙이 있는 사람에겐 예배의 공간, 신앙이 없는 사람에겐 불편함이 없는 장소가 되도록 꾸몄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명으로 십자가를 세웠다. 매장 가운데 놓였던 탁자들은 주일이면 하나로 연결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속 테이블에서 착안했다. 판매용 떡을 진열하는 곳은 성찬식 때 떡을 떼고 포도주를 먹는 장소가 됐다.

카페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카페는 열린 공간이잖아요. 매장 앞에 주일은 예배드리는 장소라고 안내하고 블라인드도 내려요. 그런데 예배 중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천지 사람들도 오고요.”

귀한 경험도 했다. “예수님과 손님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문을 닫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꼭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제가 문을 닫으면 실망할 수 있잖아요. 예수님도 마찬가지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죠. 떡은 만나와 같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하루가 지나면 상해서 먹을 수 없잖아요. 남은 물량을 걱정하는 저에게 최 장로님이 답을 주셨어요. 나눠주라고.”

자영업자 교인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자영업자는 하루 문 닫으면 손해가 커요. 그들이 신앙을 갖고 주일성수를 한다는 게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교회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박희찬 목사. 남양주=강민석 선임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하나다. 폐업하지 않고 떡집을 잘 운영해 국내외 선교를 지원하는 것이다. 군종으로 임관해 37개 교회를 섬겼던 것처럼 국내외 선교지 37곳을 섬길 계획이다. 이미 1년 예산 중 4분의 1을 선교비로 쓰고 있다. 부교역자를 뽑아 카페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비량 목회로 독립하도록 돕는 것도 목표다. 당장의 바람도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돼 성도들과 직접 만나서 교제하고 예배도 드리고 싶어요.”

남양주=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