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낳은 낙동강 오리알 ‘세무사법 개정안’

입력 2020-03-21 04:03
사진=게티이미지

법인이나 소득이 일정 규모 이상인 개인사업자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연중행사가 있다. 사업으로 올린 소득에 대한 세금을 세정당국에 신고하는 일이다. 현행법상 이 과정을 수행하는 데는 ‘도우미’가 필요하다. 세무업무 대리 자격을 갖춘 외부인의 검증을 받아야만 한다. 이들이 작성하는 ‘외부전문가 세무 확인서’는 세정당국이 성실 신고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그런데 올해는 수십년 간 견고하게 이어져 온 이 지형도에 혼란이 예고됐다. 세무대리 자격 부여와 업무 수행의 법적 근거가 되는 세무사법 6조 1항과 20조 1항이 혼란의 중심에 있다. 세무사 시험을 통과한 이들만 등록 후 세무업무를 대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던 부분이다. 해당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으며 지난해 말로 법적 효력을 다한 탓에 ‘자격’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세무사법만 놓고 본다면 누구에게 세무업무 대리를 맡겨야 할지가 불분명하다.

세무 확인서를 받아 국세청에 세금을 신고해야 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왜 이런 상황까지 흘러왔을까. 그 배경에는 세무사와 변호사의 해묵은 알력이 있다.


세무사·변호사 ‘밥그릇 싸움’에 혼란

과거에는 세무업무를 대리할 수 있는 전문가의 범위가 넓었다. 세무사 시험을 통과하거나 세무공무원 출신인 세무사, 그리고 공인회계사와 변호사가 이에 속했다. 변호사의 경우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부여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78년 5월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후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활약했었다. 세무업무 대리를 할 자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황이 돌변한 것은 2004년부터다. 세무사법이 개정되면서 2004년 1월 이후 신규로 변호사 자격을 얻은 이들은 더 이상 세무업무 대리를 할 수 없게 됐다. 세무사 자격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신 세무업무 대리의 필수 요소인 ‘등록’이 불가능해졌다. 세무사법 20조 1항은 등록하지 않은 이들의 세무업무 대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등록은 안 되지만 세무사 자격 취득은 가능하다고 명시한 이 세무사법은 불씨가 됐다. 세무사 자격이 있지만 관련 업무를 하지 못하는 변호사(2004~2017년 자격 취득)는 1만8000여명까지 늘어났다. 이들은 2018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 결과 자격이 있는 변호사를 등록하지 못 하도록 규정한 세무사법은 ‘위헌’ 판정을 받았다. 세무사와 변호사 업계의 갈등이 새 국면을 맞은 것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2019년 12월까지 대체입법을 하라고 했지만 극에 달한 양자 간 갈등에 좀처럼 결론이 나지 못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2018년 마련했던 개정안은 법무부의 반대로 국회 제출마저 무산됐다.

국회 논의가 진행된 것은 마감 시한을 불과 한 달 앞둔 2019년 11월이 이르러서다. 그나마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문턱을 넘었을 뿐이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 온 세무사법 개정안은 시한을 넘어 표류했다. 판·검사 출신인 의원들의 반대가 변호사에게 불리한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변호사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더라도 중요 세무대리업무는 못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봉합 못 한 갈등, 시장 혼란 ‘불가피’

세무사법 개정이 표류하면서 일정 기간 법적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20대 국회가 지난 17일 회기를 마감했기 때문에 세무사법 개정은 다음 국회에서 다뤄야 한다. 의원 구성이 바뀌는 만큼 언제 통과가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당장 영향을 받는 것은 지난해 세무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들이다. 700여명이 세무사 자격을 얻었지만 법적 근거가 사라지면서 등록을 할 수 없게 됐다.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전문직을 얻었지만 개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20일 “법적 기준이 없다 보니 국세청에 등록을 할 수가 없다. 신규 세무사들이 난감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달 말까지 법인세를 등록해야 하는 법인사업자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세무 확인서를 위탁해야 하는 전문가를 특정할 수 있는 법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 공백 상태인만큼 세무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들이 세무 확인서를 작성해도 불법이 아닌 상황이다. 이는 신규 세무사들도 마찬가지다. 아무한테나 세무 확인서를 받아도 문제가 없다면 괜찮겠지만 그렇게 단정짓기가 힘들다. 자칫하다가는 ‘무신고’로 처리돼 이후 가산세를 낼 수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등록되지 않은 외부 전문가들이 세무업무를 대리하는 것을 놓고 법적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논란을 해소하려면 기재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무사협회 관계자는 “세무대리 업무가 가능한 이들의 범위를 명확하게 행정지침으로 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존에 등록된 세무사들이 세무 업무를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시장 혼란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