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한끼의 기적… 우간다 아이들 얼굴엔 버짐 대신 미소가 피었다

입력 2020-03-21 04:02
우간다 카탈레의 ‘굿 시드 널서리 스쿨’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놀이터에서 놀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우간다 아이들은 갖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18세 이하 아이들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온갖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교육 기회는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성범죄 위험에도 무방비 상태다. 아동전문 NGO 라이프오브더칠드런(라칠)은 지난달 22일부터 27일(현지시간)까지 우간다의 골리(Goli), 소로티(Soroti), 카탈레(Katale)를 찾아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점검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무네제로 앨리샤(8), 카벤지 베니타(5) 자매는 라칠의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통해 자신감과 미래를 되찾았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카탈레 지역 그룹홈인 ‘쎈가 그룹홈(Ssenga Grouphome)’은 앨리샤, 베니타 자매에게 안식처가 되어줬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엄마와 살던 앨리샤는 새아빠의 아들에게 성폭행 당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아빠가 앨리샤를 데리고 나와 단둘이 지냈다. 하지만 이번엔 베니타가 위험했다. 엄마가 밤늦게까지 일하는 탓에 오빠와 단둘이 집에 남겨진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엄마는 앨리샤와 베니타를 그룹홈에서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서가 불안정하고 소심했던 자매는 그룹홈 생활 후 많이 밝아졌다. 8개월 사이 살이 붙고 얼굴엔 미소도 돌았다. 그룹홈에서 함께 지내는 또래 친구들인 나이바레 모린(8), 크와갈라 조이 사라(6), 임말링가티 메리(5)와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하며 아이들 얼굴에 졌던 그늘은 많이 사라졌다.

카탈레의 ‘쎈가 그룹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다섯 아이들과 보모.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특히 앨리샤는 먼저 손을 끌어 자신의 방을 보여주고 인형을 자랑하는 등 낯을 전혀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것들과 자신이 그린 그림도 보여주고 노트에 ‘I love you’를 적어 보여주기도 했다. 예술가가 꿈이라는 앨리샤와 의사가 꿈인 모린, 선생님이 되고 싶은 사라와 간호사를 꿈꾸는 메리는 그룹홈을 통해 자신감을 찾고 각자의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도착한 작은 도움이 만들어낸 희망이었다.

아이들 건강 지킴이, 차파티부터 마토케까지

한 끼 먹기도 어려운 우간다 아이들에게 밥이 갖는 의미는 컸다. 학교에서 아침과 점심 급식을 하자 1년도 안 된 사이 아이들 머리에 피었던 버짐은 사라졌다. 감기에 잘 안 걸렸고, 수업시간 집중력도 높아졌다. 해발 2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시골 골리에서 스티븐스 널서리 스쿨(St. Stephen’s Nursery School)을 운영하는 송인진 선교사는 “아이들이 아파도 점심 먹는 건 절대 안 빠진다”고 말했다.

골리, 소로티, 카탈레의 세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활기차고 밝은 모습이었다. 세 학교의 급식 시스템은 제각각 달랐지만 모습은 비슷했다. 우간다 주식(主食)인 차파티(밀가루 전병)와 마토케(초록바나나·굽거나 쪄서 먹는다)를 중심으로 고기나 생선, 콩, 계란 등을 얹어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우간다 카탈레 학교의 유치원생이 학교에서 마련한 급식을 먹으며 활짝 웃고 있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우간다는 오전 8시면 교복과 양말, 신발을 챙겨 입은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도착한다. 교복이 아닌 옷을 입고 등교한 아이도 심심찮게 보인다. 교복 한 벌에 5000원 정도밖에 안 하지만 하루 종일 일해도 1만 실링(약 3300원)을 벌기 어려운 우간다의 상황을 고려하면 교복값이 부담스러운 가정이 많은 탓이다. 선교사들은 “체육복이라도 입고 등교하라고 권장하지만 어려운 가정이 많아 강제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급식을 먹기 전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일렬로 줄을 서서 손부터 씻는다. 아프리카 질병의 상당수가 깨끗하지 못한 위생 상태에서 비롯되는 만큼 세 학교는 모두 손 씻기 교육을 철저히 하고 있었다. 식판에 담긴 음식을 받은 아이들은 주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밥을 먹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이곳 학생들도 빨리 밥을 먹고 뛰어놀 생각에 숟가락질을 서두른다.

선물 받은 바람개비를 들어보이는 아이들.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라칠이 준비해간 선물에 아이들은 눈을 빛냈다. 바람개비를 선물로 받은 아이들은 땀을 줄줄 흘리며 학교 앞을 뛰어다녔고, 과자를 손에 쥔 아이들은 곧장 포장지를 뜯어내며 달콤한 맛에 미소 짓기 바빴다. 무릎을 살짝 굽히는 우간다식 인사와 함께 “생큐”라고 고마움을 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문구류와 인형을 받은 여자아이들은 어른 손 크기의 인형을 얼굴에 부비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모두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옥수숫가루 한 포대의 행복

지난달 소로티에는 예고에 없던 메뚜기 떼가 찾아오며 건기로 인한 식량난에 어려움을 더했다. 통상 1㎞ 규모(약 1억5000만마리)의 사막메뚜기 떼는 하루에 3만5000명분의 농작물을 먹어치워 피해 지역에 엄청난 식량난을 초래한다.

소로티 아멘 지역은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빈민촌으로, 건기에는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칠은 소로티 지역에 25㎏짜리 옥수숫가루 약 230포대를 준비해 장애인, 노인, 고아, 과부 등에게 전달했다. 조진행 라칠 해외사업팀 팀장은 “메뚜기 떼 문제로 옥수숫가루 값이 계속 올라갈 것”이라며 걱정했다.

오랜 내전으로 남편을 잃은 여인이 많은 우간다에는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 아즈물라가 있다. 32개의 옥수숫가루 포대를 싣고 아즈물라를 찾아 포대 하나씩을 나눠줬다. 아와요 마그레트(61) 할머니는 “요새 식량난이 좀 있었다”며 “(옥수숫가루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아포요(생큐). 갓 블레스 유(신의 은혜가 있길)!”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옥수숫가루를 전달 받은 베티 낭가로와 할머니.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제공

15년 전 갑작스레 눈이 멀어버린 베티 낭가로와(76) 할머니 집에도 옥수숫가루가 전달됐다. 낭가로와 할머니와 첫째 딸 등 모두 9명이 사는 이 집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치 않아 옥수숫가루가 더욱 소중했다. 낭가로와 할머니는 옥수숫가루 전달 소식에 신이 난 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생큐 베리 마치. 갓 블레스 유!”를 연발하며 기뻐하던 할머니는 라칠 팀과 이창원 선교사가 자리를 완전히 뜰 때까지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골리·소로티·카탈레(우간다)=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