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안팎으로 빗장을 걸었다. 사람과 물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유럽연합(EU)의 가치가 코로나19 비상사태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다.
EU 집행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외국인의 EU 여행을 30일간 금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여행이 적을수록 바이러스를 더 많이 억제할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EU의 국경 통제 움직임은 회원국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EU 여행 금지는 17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논의된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인 유럽 국가들은 이미 개별적으로 국경 통제에 돌입했다. 스페인 정부는 17일 0시부터 스페인 국적자와 스페인 정부로부터 거주 허가를 받은 사람, 외교관,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는 직장인, 불가항력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만 입국을 허용키로 했다. 그리스는 자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을 국적에 상관없이 14일간 격리하기로 했다. 독일마저도 전날부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룩셈부르크, 덴마크 국경에서 화물과 통근자를 제외하고 이동을 차단했다.
자국 내 이동금지령을 내리는 국가도 늘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이어 프랑스도 이날부터 15일간 자국 내 이동금지령을 시행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공무원 및 군인 10만명을 동원하고, 이동금지령을 어길 시엔 135유로(약 19만원)까지 벌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생필품이나 의약품을 구해야 하는 경우,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장의 출퇴근 등은 예외로 했다. 다만 집 밖으로 나갈 땐 반드시 외출 사유서를 작성해 검문 치안대에 보여줘야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리는 전쟁 중”이라고 수차례 강조하며 “자택에 머물고 개인위생수칙을 지켜 달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면 우리 모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강변을 산책하거나 공원, 카페 등에 나오는 등 무심한 태도를 보이자 직접 호소에 나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증상이 없어도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 친구와 부모 등 소중한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면서 “연대의식과 책임감을 보여 달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휴교령이나 이동금지 등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영국도 결국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술집과 극장, 영화관 출입은 물론 불필요한 여행 등 사회적 접촉을 최소화해 달라”면서 “누구라도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면 자택에서 14일간 자가격리에 돌입하라. 모든 직장인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70세 이상 고령자와 임산부,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사회적 접촉을 특히 삼가 달라”고 덧붙였다.
독일에서도 사실상의 이동금지가 시작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사회적 거리를 넓혀 달라. 국내외를 여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와 영국 BBC에 따르면 17일 오전(현지시간) 기준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는 6만6300명을, 사망자는 2900명을 넘어섰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에서 확진자는 2만7980명, 사망자는 2158명에 달한다. 스페인에선 16일 하루 만에 확진자가 2000명, 사망자는 150명이 증가해 각각 1만1178명, 491명으로 집계됐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