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1500m의 학생선수 이형우(18) 군은 한달 넘게 얼음 위를 달리지 못했다. 예년이라면 한창 메달을 다툴 시기지만, 요즘 할 수 있는 훈련이라곤 나홀로 웨이트트레이닝이 전부다. 국내 빙상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부분 폐쇄되어서다. 예정됐던 대회도 취소·연기되고 학생들의 단체훈련도 금지됐다. 대학 진학을 앞둔 그에게는 고교 3학년인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지만, 이제 그 기회마저도 달아나고 있는 기분이다.
1~2학년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이군은 목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메달이 절실하다. 중학생 시절 전국대회 우승까지 경험했지만 고교 시절은 악몽이었다. 성적이 오를만하면 부상을 당해서다. 지난해 2월 오른발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은 그는 힘겨운 재활을 거쳐 지난달 가까스로 동계 전국체전 결승 무대를 밟았다.
그에게 빙상 밖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사준 스케이트로 얼음판과 첫 연을 맺었으니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좋은 환경을 갖춘 대학에 진학해 종국에는 태극마크 달린 스케이트를 신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다음 대회에서는 메달 딸 자신이 있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코로나19로 올해 대회들이 줄줄이 취소·연기되고 단체훈련까지 금지되면서 고교 3학년 선수들이 혼란에 빠져있다. 대학 입시의 시작인 9월초 수시의 경우 3학년 성적이 절대적인데, 현재로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부 각 부처에서는 입시 관련 대책의 윤곽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각 종목 연맹이나 협회도 대응이 제각각이다.
17일 현재 정부 지침은 각 지역 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에 단체훈련을 금지하도록 한 것이 전부다. 오는 5월 각 대학의 입시요강이 나오기 때문에 최소한 다음 달까지 모든 대회 일정이 정해져야 하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학생선수들을 방치한 셈이다. 한국체대 관계자는 “교육부 지침이 나온 게 없어서 현재까지는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 고교 감독은 “코로나19가 전례 없는 사태라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고3 학생선수들은 올해 선수 인생의 모든 게 달려있다. 최소한 대회나 입시 일정 논의는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3 선수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기약없는 준비를 계속하고 있다. 원반 던지기 학생선수인 이요섭(18) 군은 한달째 아침마다 혼자 한시간씩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단체훈련 금지로 운동할 곳이 없는 그는 팔굽혀펴기 등 맨몸운동을 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매일같이 끼고 살아온 원반은 만져본 지 오래다. 감독의 코치도 ‘온라인’으로밖에 받을 수 없다. 원반 없이 홀로 자세훈련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감독에게 보내면 피드백이 오는 식이다.
본래 다음 달 예정됐던 육상대회는 개최지가 대부분 코로나19가 가장 심각한 경북 지역에 몰려있다.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육상 관련 시설을 갖춘 곳이어서다. 대회 연기가 당연시되지만 육상연맹은 아직 공지도 내보내지 않았다. 지난해 순위를 전국 6위까지 끌어올린 이군에겐 올해 ‘막판 스퍼트’가 필요하지만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야구 명문 광주일고의 배터리 이의리(18), 조형우(18) 군에게도 올해는 중요한 해다. 이군은 강속구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좌완이고, 조군은 타격에 재능이 많은 다재다능형 포수다. 1학년 때 광주일고가 전국대회 2관왕에 올랐지만 당시 두 사람은 주축이 아니었다. 지난해 불운한 조편성 등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두 사람은 올해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이달부터 시작해야 할 주말리그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 타자 없는 투구 훈련, 투수 없는 타격 훈련만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주요 전국대회의 지역예선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지역 1등을 해야 황금사자기, 청룡기, 전국체전 등을 모두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정이 취소되면서 둘은 연습게임조차 경험하지 못했다. 8월 프로팀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을 수 있는 고교생은 전체 인원 110명 중 약 80%다. 비교적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둘이지만 지명을 장담할 수는 없다.
이전 학년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영 국가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서지원(18) 양은 한달째 25m 길이의 어린이 강습용 수영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서양은 “시즌에 맞춰 몸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려야 기록 갱신이 가능한데 그동안 했던 패턴이 무너진 상태”라며 “선수용 수영장으로 돌아가면 물 깊이에 따라 감각과 힘조절 수준을 다시 익혀야 한다”고 토로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17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 관련해 실현가능한 대입 일정 변경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언했다. 입시일정 변경에 대한 첫 공식 언급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체능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수시 일정 관련해 필요하다면 문체부에 공문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교육부가 지침을 주는대로 종목별로 최대한 빨리 대회 일정을 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효석 이동환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