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뒤늦은 금리인하 금융위의 근시안적 증시 처방 부총리의 마스크 공장 인증샷
미증유 위기에 선제적 대응은 없고 정부 대책은 매번 늑장
리더십 발휘해야 할 상황에서 수장들이 눈치만 보고 있어
지구촌이 혼돈스럽다. 코로나19가 유럽과 미국 등지를 본격적으로 휩쓸자 국제사회는 패닉 상태다. 한국과 중국에선 한풀 꺾였지만 코로나19의 지구촌 확산은 지금부터라는 게 문제다. 미증유의 비상 상황이다. 지난주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글로벌 경제가 받은 충격은 상상외로 컸다. 세계 증시는 연일 맥없이 고꾸라지고 있다. 각국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국경 차단과 봉쇄 정책에 나서 물적·인적 교류가 끊기면서 실물경제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금융과 실물 부문이 동시에 흔들리는 초대형 복합 경제위기다.
허약한 체질의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은 더 심각하다. 이미 성장 둔화에 내수 침체, 수출 부진 등을 겪고 있는 마당에 글로벌 시장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으니 퍼펙트 스톰의 공포가 엄습한다. 엎친 데 덮친 격에 기업들은 아우성이고 자영업자들은 비명을 지른다. 소비를 해야 할 가계는 일상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정부 경제팀은 비상계획에 따라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한데 정부 대처는 매번 늑장이고 뒷북이다. 마스크 대책 하나만 보더라도 중앙정부가 일개 구청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난국 타개를 위해서는 중앙은행도 적극적 통화정책으로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우선 한국은행의 안이한 인식부터 따져야겠다. 지난달 27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금리를 동결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소극적 태도가 몸을 사리게 했다. 경제 위기 국면에선 중앙은행이 구원투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은은 등판을 계속 미뤘다. 그 사이 미국 중앙은행은 3일과 15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소집해 금리를 연이어 인하했다. 시장이 예상치 못한 전격적 결정이었다. 인하 폭도 0.5% 포인트, 1% 포인트나 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미국의 2차 기습 조치에 놀란 한은은 그제야 임시 금통위 회의를 열고 0.5% 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선제적 대응이 아닌 후행적 행태다. 물론 예전처럼 금리 인하에 따른 실물경제 부양 효과를 보장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헤쳐 나가겠다는 통화 당국의 결단은 진즉 나왔어야 했다.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증시 대책도 한심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공매도 관련 조치가 단적인 예다. 그간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부에선 증시 안정을 위해 공매도 전면 금지라는 선제적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수수방관했다. 그러다 10일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대상 확대’라는 수준 이하 땜질 대책만 내놓았다. 하지만 팬데믹 선언으로 증시가 12·13일 연일 대폭락하자 이게 역부족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뒤늦게 6개월간 공매도 금지 조치를 발표했지만 이미 개인투자자들은 털릴 대로 털렸다. 공매도 금지로 추세적 하락을 막을 순 없지만 증시 변동성은 그나마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작 취해졌어야 할 조치였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하루라도 빨리 막았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던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는 줄었을 것이다. 실기했다는 지적에 대해 금융위원장은 할 말이 없던지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금융 수장의 뒷북 처방, 이건 무능인가 무지인가.
경제부총리는 또 어떤가. 경제사령탑으로서 존재감이 없다. 추가경정예산안은 난색을 표하다 등 떠밀려 마련했다. 추경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는 여당 대표와 티격태격하며 파열음을 냈다.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상황에서 감정싸움까지 벌였으니 이 무슨 추태인가. 국난 극복을 위한 비책 마련에 전념해야 할 사령탑이 지난주 국내 증시가 폭락한 상황에서 마스크 생산공장을 시찰한 것도 부적절해 보인다.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다 해도 마스크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맡아서 할 일이었다. “정부 담당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인증샷을 찍으려고 달려간 꼴이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뭔지 모르는 듯하다.
대통령 입장에서도 영 미덥지 않았는가 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주재하는 ‘비상경제회의’를 19일부터 가동해 경제 대책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경제 수장들이 눈치만 봐서는 곤란하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