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수출 중심 대기업들 사이에 ‘셧다운’(업무정지)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국민일보가 16일 13개 대기업 및 그룹사 관계자를 설문조사한 결과(그래픽 참조) 절반 가까이가 올해 사업계획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 후 반등 기대를 접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국내 10대 대기업 관계자는 16일 “지난주부터 국내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면서 하반기에는 세계 시장이 반등한다는 기대를 했다”며 “주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더 기승을 부리자 글로벌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다시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고 말했다.
A기업 임원은 “우리 그룹은 미국에 여러 공장을 갖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면서 촉각이 곤두선 상태”라며 “글로벌 사업 확대 차원에서 핵심 국가 중 한 곳인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어떤 양상으로 전파될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수출 중심의 B기업도 미국과 유럽 시장의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생산 차질이 없도록 관리 중이지만 세계 시장의 큰손인 미국과 유럽의 소비 심리 위축이 우려된다”며 “상반기에는 반도체 서버 데이터 센터 수요가 살아나고 있지만 하반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 하강 영향을 비교적 늦게 받는 반도체업체도 하반기를 어둡게 전망했다. C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메모리 재고 수준을 봤을 때 공급과 수요 모두 바닥에서 정상 수준으로 오르리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모바일, PC 및 전자기기 등 시장도 현재까지 메모리 수요의 변동은 크진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고 답답해 했다.
그는 “모바일, PC 및 전자기기 시장은 경기에 민감한 시장이라 메모리 수요가 떨어질 수도 있다”며 “현 상황이 지속되면 글로벌 경기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에도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기업들은 현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내수 중심의 유통 기업들은 말 그대로 ‘비상대책’을 강구 중이다. D사 임원은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체질도 강화되고 학습도 했는데 코로나19는 글로벌로 확산돼 자금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이라며 “국내 상황만 좋아진다고 좋아질 게 아니고 세계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내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과 유럽 시장 비중이 큰 기업들의 고민도 크다. E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이 내수나 아시아 시장 파급을 넘어 전 세계 시장을 흔들고 있다”며 “구미 시장에 큰 비중을 둔 우리는 일단 현지 시장의 수요와 공급량이 적절한지 조사하고 있고 이 조사를 바탕으로 향후 시장 대응 전략을 논의할 것 같다”고 했다.
신재생 에너지를 구미에 수출하고 있는 F사 관계자는 “전 세계가 서로 입국을 금지하며 폐쇄하는 상황을 보면 대공황 급의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각 기업 입장에서는 경비를 아끼고 구조조정을 하고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는 등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강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 등 중공업계는 2~3년 후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G사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포함해 여러 대책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자동차 업계도 우울하다. H사 관계자는 “세계 차 시장이 축소되면 성장이 둔화되고 당연히 수출 등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주요 고객층인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자동차기업인 I사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에 코로나19가 퍼진 게 비교적 최근 일이라 아직 수치로 피해가 나온 건 없지만 피해가 곧 표면화될 것”이라며 “연초에 목표로 뒀던 생산 판매량은 지금 상황으로선 달성이 어렵다는 비관적 예측이 나온다”고 했다.
강주화 김성훈 박구인 권민지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