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이] “바이러스에겐 77억 인간이 블루오션”

입력 2020-03-17 04:05
최재천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초대 국립생태원장과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지냈다. 통섭의 석학답게 다른 생물과의 공생을 강조하다가 자본주의와 난민문제, 재난기본소득까지 거침없이 이야기가 뻗어 나갔다. 김지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58일째. 답답한 긴 터널의 길을 밝혀줄 이로 최재천(66)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찾았다. ‘통섭’이라는 용어를 만든 주인공답게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한국 대표 사회생물학자이자 40여권의 책을 펴내 대중에게 친숙한 스타 과학자이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비롯된 박쥐에 대한 논문을 서너편 쓴 것은 물론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불러올 전염병의 위험에 대해 꾸준히 경고해 왔다. 마침 이번 학기 그가 개설한 강의의 제목도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다.

만난 사람=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사스부터 신종플루, 메르스에 대해 많은 글을 쓰셨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커지리라 예상하셨나.

“2015년 메르스 때 썼던 글을 찾아봤다. 놀라운 게 ‘메르스’를 ‘코로나19’로 바꾸면 토씨 하나 안 바꿔도 될 만큼 다 들어맞더라. 그때도 흥분하지 말자는 얘기를 썼었다.”

-메르스 때와 상황이 똑같고, 정부와 국민들의 대응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그때보다 상당히 잘하고 있다. 해외 동료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한국이 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다하고 있는 거라고 한다. 다만 시민들이 지나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 ‘전염성 질병의 진화’라는 책을 쓴 폴 이월드 교수와 이메일을 하다가 현 상황은 집단지성의 나쁜 사례 같다고 했다. 미국의 휴지 사재기가 비슷한 경우다. 잘못된 정보가 한번 전파되니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마스크 대란 말씀이군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3349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중 보행 중에 사망한 사람이 1302명,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죽은 사람이 1150명…. 이쯤 되면 길에 나가면 안 되는 거다. 코로나19 사망자는 100명이 안 되는데 이게 뭔가. 마스크는 대구·경북 쪽 분들과 의료인, 공무원, 사람을 상대로 일하는 분, 오늘 아침에 목이 칼칼했다 하는 분들만 사야 하는 거다. 전쟁으로 치면 후방에 있는 사람들이 물자를 다 써서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시는 건가.

“바이러스는 스스로 번식할 능력이 없는, 엄밀하게 말하면 생명체가 아니다. 바이러스가 내 몸 안에 들어와 내 유전자에 올라타려면 상당량이 들어와야 가능하다. 확률적으로 거의 안 일어나는 일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고 가장 교육 많이 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메르스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약간 급해지면 어떤 소리 하나에 휩쓸려서 답답하다.”

-애초에 마스크 쓰고 손 잘 씻으라는 게 정부의 가이드라인이었다. 최근 들어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 하니까 마스크 수급 실패 때문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정부가 ‘마스크 쓰지 마세요’라고 처음부터 얘기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다만 이런 분들이 쓰는 거고, 이런 분들은 쓸 필요가 없고, 그러니 모자라면 양보해야 합니다, 이런 설명이 이어져야 했는데 그게 안 됐다. 나는 마스크 한 장 얻어서 몇 주째 쓰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 들어갈 때 착용하고, 누군가를 대해야 할 때 쓴다.”

-박쥐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까지 박쥐에게서 유래된 세 번째 전염병인데.

“포유류 다섯 중에 하나가 박쥐다. 일단 개체가 많고, 혼자 다니는 동물에 비하면 박쥐는 모여 있으니까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모여 살면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 압도적으로 유리하지만 병원체 때문에 질병이라는 대가가 생긴다.”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가 어떻게 인간에게 전해지나.

“박쥐가 우리한테 일부러 바이러스를 배달했을까? 아니다, 우리가 박쥐한테 접근한 거다. 박쥐가 사는 동굴은 찾기도 힘든데, 동굴 앞까지 길을 내고 들어가서 들쑤시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 거대 가구기업들이 아프리카 숲에 투자해 벌목해서 길을 내면 트럭이 들락거리고, 트럭 사이로 사냥꾼들이 들어간다. 동물 잡는 게 쉬워지니까 산업이 돼 버린다.”

최재천 교수가 2017년 12월 국립생태원장 재직 시절 공모전에 입상한 어린이에게 무릎을 꿇고 상장을 전달하는 모습. 당시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뉴시스

-야생동물 식용 문화를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는데.

“박쥐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뿌릴 확률은 극히 낮다. 박쥐가 훨씬 자주 만나는 어떤 동물에게 옮겼고, 그 동물이 인간을 자주 만나는 바람에 제2, 제3의 숙주를 통해 온 거다. 이번에 천산갑이 중간숙주가 맞는다면, 중국인들이 천산갑 비늘을 한약재로 쓰니까 가공하는 과정에서 옮았을 것이다. 박쥐와 직접 접촉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박쥐를 제법 먹는다. 나이로비에 가면 유럽인들이 야생동물 고기 음식점 가서 고릴라 코뿔소 원숭이 박쥐를 골라 먹는다. 파리와 런던에도 그런 음식점이 생겼다. 그 고객들을 먹이기 위해 야생동물을 잡아오고, 그 과정에서 동물들에 붙어살던 기생생물들이 인간에게 들러붙는 거다.”

-앞으로도 박쥐가 신종 전염병 주범 역할을 하게 될까.

“모여 사는 동물이 박쥐만은 아니니까 다른 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봐서는 박쥐가 몇 가지 속성상 그럴 수 있어 보인다. 인간에게 옮기려면 같은 포유류여야 쉽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한테 잘 못 오는 건 인간과 조금 먼 조류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든 세균이든 블루오션을 만났다. 77억 인간을 공략하지 않으면 누구를 공략하겠는가. 지구에서 가장 흔한 동물이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가축이다. 인간과 소·돼지·닭은 전부 다닥다닥 모여 있으니, 야생동물발 전염병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한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왜 이런 병들이 과거보다 더 자주 나타나는가? 2000년대 들어서는 5~6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셈이다.

“사스가 2003년, 신종플루가 2009년, 메르스가 2015년, 코로나19가 2019년이다. 다음번엔 3년 후? 그다음엔 해마다? 이렇게 될 거다.”

-유발 하라리와 대담할 때 하라리가 300~400년 안에 인류가 절멸할 것이라는 얘기를 꺼냈더니 교수님께서 ‘몇백년 걸릴 이유가 있겠나. 이번 세기도 못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맞받았다고 했다.

“이번 세기 안에 망할 거라고 단언한 게 아니라 이번 세기에 인류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농담으로 한 게 아니라 저는 진지했다.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뜻이다.”

-기후변화와 전염병 때문인가.

“기후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질 생물 다양성, 그 두 문제에 코로나19도 연결돼 있다. 인간이 자연생태계를 파괴해 잘 살던 그 아이들이 우리한테 바이러스를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꾸 만들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다.”

최재천(왼쪽) 교수가 침팬지 연구의 대가인 제인 구달 박사와 2017년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에코 토크쇼에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뉴시스

-그래도 코로나19도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제인 구달 선생님은 항상 희망을 얘기하신다. 얼마 전 제 안부를 물으면서 ‘좋은 일도 있을 거야. 벌써 몇 번째 겪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게 우리에게 좋다는 걸, 어쩌면 그 계산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셨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전 저서를 통해 인간이 살아남을 무기는 다른 생물과 공생뿐이라고 했다. 코로나19도 자연과의 공생이 답인가.

“맞다. 자연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사례가 꽃을 피우는 식물과 꽃가루를 옮겨주고 꿀을 받은 곤충이다. 지구에서 무게로 가장 성공한 게 코끼리나 고래가 아니라 꽃을 피우는 현화(顯花)식물이다. 즉 무게로 가장 성공한 식물과 숫자로 가장 성공한 곤충이 손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이에나가 사자랑 맞짱 뜨는 거, 이게 삶의 현장인 줄 알고 그것만 들여다본다. 생물학자로 평생을 살면서 관찰해온 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 세상은 손잡은 놈들이 미처 손잡지 못한 놈들을 이기고 살아남은 세상이다.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 것인가 고민하는 게 훨씬 현명할 수밖에 없다. 이게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걸 이해하면 공존과 공생에 좀 더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

-교수님은 ‘다르면 다를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특별하고 재미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다르면 갈등하고 혐오하고 분열하는 시대가 됐다.

“다들 모자라는 점을 너무 들춰내서 얘기하지만, 저는 대한민국에 엄청난 신뢰와 기대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로 이해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지난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었던 것도 변화하기 위해 진통을 겪은 것이고, 성숙하게 서로 얘기하고 풀어나가는 다음 단계로 가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그것의 시작이 토론하는 문화인데, 올해 개인적으로 제일 노력해볼 게 토론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토론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데가 정치 분야다. 이번 총선엔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았으면 좋겠다. 결석 안 하고 국회 출석해서 국민들이 하라는 일 잘 상의해서 결론 낼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