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는 창세기 1장 5절 말씀이다.
이 말씀으로 ‘잠은 창조와 부활을 위한 필연적 축복’이라는 주제를 살펴보자.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하루 세 끼 먹어야 하고 군침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땀을 흘리면 몸에는 보석이 남는다.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 ‘말숨’도 쉬어야 한다.
그런데 이 네 가지가 실천되기 위해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잠이다. 잠은 먹는 것과 침, 땀과 숨을 원활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하루 세 끼를 먹으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세 끼 식사를 보장하는 것이 잠이다. 잠이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이다.
희한하게 아침에 배가 고프지 않다. 왜 그럴까.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야식 먹고 돌아다닌 게 이유다. 배에 음식이 남아 있어서다. 아침 식사를 거르니 점심에는 폭식한다. 이런 삶은 게으른 습관으로 이어진다. 수고하는 땀의 보람도 경험할 수 없다.
입안에 군침이 고이지 않고 수고하는 땀을 내지 못하는데 마음의 평안함이 찾아올 리 없다. 근심과 불안한 마음만 남는다. 오후 6시쯤 저녁을 먹으면 오후 10~11시 사이 배가 고프기 전 잠을 잘 수 있다. 살짝 공복을 느끼고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렇게 자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배가 고프게 돼 있다. 입안에는 더 많은 군침이 고인다.
그러면 활력이 넘친다. 수고하는 땀을 흘리는 하루를 살 수도 있다. 일과가 시작되고 오전 11시쯤 되면 다시 배가 고프다. 군침이 돌 때쯤 점심을 먹는다. 잠을 잘 잤기 때문에 식곤증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활력이 있어 업무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만사형통하니 마음은 평안해진다. 숨쉬기도 편안해진다.
잠이 기준이다. 성경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라고 말한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밤인 것이다. 에너지와 생명의 출발은 잠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의 모습을 잠들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땅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위에 있다”가 그것이다. 잠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고 있다”고도 했다. 운행한다는 말은 독수리가 새끼가 있는 둥지 위를 빙빙 돈다는 의미다. 새끼 독수리들의 첫 비행을 유도하는 어미 독수리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잠자고 있는 땅을 향해 깨어라, 일어나라 명령하시는 장면이 바로 창조의 출발이다.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하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향해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것”이라면서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셨다. 무덤에 잠들어 있는 나사로를 향해서도 “나사로야 일어나 나오라”고 외치셨다.
잠은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을 때도 ‘일어나셨다’고 한다. 일어나기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한다. 깨어나기 위해서도 잠들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잠의 상태인 땅을 품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잠의 상태인 인생을 향해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처럼 잠이란 생명으로 향하기 위한 필연적 상태를 말한다. 일어나고 재생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완벽하게 통과하신 후 일어나셨다. 십자가는 잠이다. 우리의 몸은 잠을 통해 매일 죽음을 연습한다. 죽음에서 일어날 부활을 잠을 통해 배우고 있다. 잠은 단순한 생리학적 현상이 아니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고 장수하게 하는 생명의 원리다. 영혼을 재창조하고 부활에 이르게 하는 진리인 셈이다.
건강한 잠을 자자. 그 잠을 통해 더욱 건강해지길 바란다. 또한 편한 잠을 통해 부활과 창조를 엿보는 시간이 되길 당부한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