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된 선수들 답답·초조… 구단은 ‘분위기 업’ 신경

입력 2020-03-12 04:0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프로스포츠는 현재 ‘올 스톱’ 상태다. 선수들은 팬들 앞에서 경기하는 본업을 잃은 신세. 코로나19 확진자가 많거나 외부 이동이 어려운 지역에 숙소와 훈련장이 있는 구단의 선수들은 더더욱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황순민(오른쪽) 등 프로축구 K리그1 대구 FC 선수들이 지난달 11일 경남 남해 상주한려해상체육공원에서 열린 전지 훈련 중 연습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다. 대구 FC 제공

프로축구 K리그1 대구 FC 선수들은 지난달 12일 경남 남해 전지훈련을 마친 뒤 대구로 돌아와 ‘자발적 격리’를 하고 있다. 대구는 11일 기준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5794명으로 가장 많다. 지난달 29일 예정됐던 K리그 개막이 연기되면서 숙소와 훈련장이 위치한 대구에서 합숙하던 선수단은 코로나19의 직격타를 맞았다.

대구 FC 코칭스태프들은 선수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외국인 선수들은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불안함을 토로하고 있다. 다른 선수들 역시 숙소에 갇혀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코칭스태프들은 답답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위생 관리에도 힘써야 했다.

경기력 유지는 더 문제였다. 연습 상대를 찾을 수 없어서다. 대학 팀들은 ‘학교에서 대구로 가지 말라고 한다’며 연습 경기를 고사했다. 비오는 날엔 선수들의 면역력이 떨어질까 실내에서 웨이트만 한다. 올 시즌 감독 대행으로 팀을 꾸리게 된 이병근 감독대행으로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이 감독대행은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외국인 선수 이탈을 막기 위해 조광래 사장님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들이 설득에 애를 썼다”며 “답답해하는 어린 선수들에겐 ‘시국이 시국이라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소연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격리된 선수들도 최대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3년부터 대구에서 뛴 황순민은 “한 명만 걸려도 전체가 걸릴 수 있는 상황에 모두가 예민해 말 한 마디도 조심한다”며 “저도 후배들과 보드게임도 하고 탁구도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K리그2 안산 그리너스를 떠나 대구로 이적한 20세 이하 대표 출신 황태현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동계훈련에 몸을 열심히 만들어 하루 빨리 경기에 나서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며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데 제 선택으로 대구에 온 만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혜민(왼쪽 두 번째) 등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GS칼텍스 선수들이 지난 4일 경기도 가평의 훈련장에서 단체로 영화 ‘기생충’을 관람하던 중 포즈를 취한 모습. GS칼텍스 제공

선두 현대건설(승점 55점)과 우승 경쟁을 벌이던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GS칼텍스(54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V-리그는 이달 3일 리그를 중단했다. 재개가 불확실해 선수들은 훈련장에 발이 묶인 상태. 훈련장이 인적 드문 경기도 가평의 산중에 있어 외출해도 딱히 갈 곳이 없다. 외출도 구단에서 최대한 자제시키고 있다.

차상현 감독은 “아무래도 선수들의 정신력과 체력이 시즌 초반보다는 다운된 상태”라며 “나라 자체가 어수선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구단에선 선수들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지난 4일엔 훈련장에서 영화 ‘기생충’을 관람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훈련 코트엔 분위기 전환을 위해 텐트까지 설치했다. 6일엔 차 감독까지 선수들과 팀을 나눠 ‘손 안쓰고 배구하기’ ‘앉아서 배구하기’ 같은 색다른 훈련도 진행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훈련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주장 이소영은 “8시즌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오다가 이렇게 길게 쉬는 건 처음이라 어색하다”며 “선수들이 워낙 긍정적이라 최대한 웃으면서 지내려 한다”고 밝혔다. 데뷔 2년차 박혜민도 “언니들과 영화를 관람한 게 재밌었다”며 “외부로 나가지 못하지만 숙소 내 여가시설을 활용해 밝게 지낸다”고 말했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강제 격리’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단 점이다. K리그와 V-리그는 각각 4월 초와 3월 4째주를 리그 개막·재개 시점으로 꼽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각 연맹도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지 않을 경우 리그 강행의 명분이 없단 입장이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