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안 보여 하늘만 보고 있어요”

입력 2020-03-12 00:04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A극단 공연장에서 배우들이 대본 연습을 하며 공연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A극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든 공연이 중단됐습니다. 탈출구가 안 보여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때 대출받은 것을 아직도 갚고 있는데 현재로선 대출을 더 받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20년간 공연계에 종사한 A극단 대표 B씨는 9일 국민일보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 한두 달 더 지속하면 회복 불가능 상태가 된다.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A극단의 소속 배우 중에는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없어 부모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배우뿐 아니라 극단을 운영하는 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공연을 하지 않아도 월세는 계속 내야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기독 문화계도 타격을 입었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그나마 예정돼 있던 공연과 집회, 문화행사 등이 취소돼 문화 사역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공연 중단으로 텅빈 A극단 공연장 모습. A극단 제공

지난 1월 중순 록 뮤지컬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표현한 뮤지컬 ‘지저스’는 오는 5월까지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말 공연을 중단했다. 원패스엔터테인먼트 이사장 박원영 목사는 “그동안 투자한 비용만 3억원 가량이 된다. 당장 월세를 내야 하는데 여력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참여하신 분들에겐 나중에 공연이 재개되면 볼 수 있는 티켓을 드린다”고 전했다.

19년차 찬양사역자인 C목사는 “그동안 조금씩 저축한 게 있어 그걸로 버티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서너 달 더 이어지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힘들지만 긍정적인 점도 있다. 가족과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녀와 친밀해졌다. C목사는 “가족관계가 더 끈끈해졌고 회개 기도를 하며 묵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곡을 쓰는 시간도 충분히 가지려고 한다”고 했다.

미니스트리를 운영하는 D대표도 “지난달 중하순부터 모든 일정이 중단됐다”며 “미니스트리 멤버들이 개인 레슨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D대표는 “문화 사역자들이 영상 제작에 대한 필요를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다만 신학적으로 영상 예배에 관한 규정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보니 교회도 성도도 목회자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극단을 운영하는 E대표도 공연을 중단하고 다음 작품 준비에 매진한다고 했다. E대표는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진 못하지만 각자 매일 5시간씩 신체 동작, 노래, 연기 등 파트별로 훈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예배드리는 시간도 갖고 있다”며 “임대료가 부담이지만, 위축되지 않고 준비한다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전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