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우 스키빈스키(글) 알라 반크로프트(그림) 지음, 이지원 옮김, 사계절, 128쪽, 1만4000원
당시 노인의 나이는 여덟 살이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던 그는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방학 숙제로 매일 일기를 써야 했다. 그는 하루에 한 문장씩 연필로 그날의 일과를 적었다. “동생과 선생님과 함께 시냇가에 갔다” “할머니와 산책을 했다” “커다란 애벌레를 발견해서 정원에 놓아 주었다” “무서운 폭풍우가 쏟아졌다”….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는 폴란드에서 “고요한 노인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미하우 스키빈스키(90)의 어린 시절 일기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이다. 평범하고 별것 아닌 이야기가 담겼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그가 일기를 쓰던 1939년은 전쟁의 엄혹한 분위기가 감돌던 때였다.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릿해지는 글이 곳곳에 등장한다. 8월 29일 일기 “아빠가 나를 보러 왔다”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이날은 저자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는 전투에 참전했고, 11일 뒤인 9월 9일 전사했다. 저자는 9월 1일 일기에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적었고, 이틀 뒤엔 “비행기를 피해 숨었다”라고 썼다. 세상물정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전쟁은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들이 계속 날아다닌다” “무서운 전투가 일어날 거라고 한다” “대포 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위로 포탄 파편들이 날아왔다”….
이 같은 일기장 속 내용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이는 폴란드 바르샤바미술아카데미 학생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알라 반크로프트(23)다. 반크로프트는 독특한 감흥을 자아내는 유화를 통해 책의 감동을 끌어올린다. 즉, ‘아름다운 딱따구리를…’는 일흔 살 가까이 차이나는 폴란드의 노인과 청년이 공동으로 만든 합작품인 셈이다. 책은 올해 ‘어린이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에서 신인 작가 데뷔작에만 수여하는 ‘오페라프리마 부문 스페셜 멘션’을 받았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