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가 창궐했던 2015년 기자는 박근혜정부 청와대를 출입했다. 그해 5월 20일 국내 1호 메르스 환자 확진 이후 슈퍼전파자에 따른 병원 내 집단감염 확산 사태로 국민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시 청와대와 정부 판단은 어땠을까. 박근혜정부는 첫 환자가 발생한 지 보름 넘도록 환자들이 확진을 받았거나 경유한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주지 않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정부는 6월 들어 병원 24곳을 뒤늦게 공개했다.
사태 초기에 정부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느슨하게 대응한 게 큰 실수였다. 청와대는 1호 환자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직접 나서서 챙기지 못했다. 청와대에 대책반이 구성된 것도 6월이었다.
메르스 첫 사망자 발생 등 감염 공포가 확산되던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한 기업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이 국가지정격리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은 것은 첫 환자 발생 보름 뒤였다. 물론 대통령의 경제행보 역시 중요하지만, 국가의 리더가 불안에 떠는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더 나을지를 생각해보면 행보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필요 이상의 공포심은 ‘오버’라고 했던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여론의 날선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대통령의 기본 책무다. 대통령 또는 청와대 참모들이 상황인식을 달리했다면 대응방식, 결과 모두 달랐을 것이다. 메르스는 총 186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39명이 사망했다.
5년이 흐른 2020년 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는 50일 넘게 전국을 휩쓸고 있다.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보건 당국은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이 요구한 대책 마련엔 매번 한발씩 늦었다. 물론 감염병 차단이 지상과제인 전문가들과는 달리 정부는 종합적인 고려와 정무적 결정을 해야 한다지만, 이른바 선제적 대응이 이뤄졌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사태 초기 청와대의 대응은 어땠을까. 추가 확진자가 며칠 잠잠하던 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 2월 17일 “일부 언론을 통해 지나치게 공포나 불안이 부풀려졌다”고 했다. 경제에 미칠 막대한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적절치 못했다.
2월 20일 ‘청와대 짜파구리 오찬’은 정점을 찍었다. 영화 ‘기생충’ 제작진 초청은 사전에 예정됐던 일정이라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청와대에서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본 국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행사를 미뤄도 됐고, 예정대로 해도 크게 홍보할 일은 아니었다. 이날은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하고, 확진자 수도 100명을 넘어선 날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후 거의 매일 코로나19 관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 초기의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확진자가 8000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가 60명을 넘긴 지금도 ‘마스크 대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장관들의 가벼운 말 역시 국민에게 상처를 줬다. “코로나19 확산의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보건복지부 장관) “한국인 입국금지는 방역능력 없는 국가의 투박한 조치”(외교부 장관) 발언은 100% 틀린 말도 아니지만, 장관이 직접 이런 얘기를 국민 앞에서 할 필요는 없다.
청와대와 정부는 코로나19 극복 및 대응을 위해 그야말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방역 모범사례” 등 청와대의 자화자찬식 평가는 조금 뒤로 미뤄두면 어떨까. 정부가 벌써부터 자평하지 말고, 국민이 스스로 평가하게 놔두면 된다.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