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히 유행에 둔감한 사람도 ‘이것’은 알 법하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상상은 가능하다. 계속 이것을 떠올리다보면, 무언가를 실행하고 싶게 만든다. 거창하다면 거창하고 소소하다면 소소한 이것은 ‘짜파구리’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서 만든 이 메뉴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고, 누구나 한 번 쯤 이와 관련한 무용담을 늘어놓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을 거머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면서 짜파구리는 ‘힙한’ 음식이 됐다. 영화에서는 짜파구리를 만들면서 소고기 채끝살 부위를 곁들였는데, 온라인 쇼핑몰에서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담으면 연관 검색어로 ‘소고기 채끝살’이 함께 등장한다. 이렇게 짜파구리는 소고기와도 혼연일체 됐다.
농심에 따르면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일인 지난달 10일을 기준으로 2월 11일부터 15일까지 짜파게티와 너구리 합산 매출은 전주(2월 4~8일)보다 약 55% 증가했다. 한국 영화 최초 오스카 4관왕이라는 쾌거에 수많은 소비자들이 짜파구리를 구매함으로써 동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는 꽤나 익숙한 용어지만 ‘짜파구리’는 어떤 제품에 대한 공식 명칭은 아니다. 짜파구리는 농심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만든 요리로, 소비자가 취향대로 제품을 만드는 모디슈머(Modify와 Consumer의 합성어) 열풍의 원조다.
모디슈머들은 라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품영역에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를 일종의 ‘게임’으로 여기며 재미와 즐거움을 이용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게 모디슈머가 만드는 요즘의 경향성이다.
모디슈머들은 자신들의 소비 행태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공유하고 모방하며 확대 재생산을 한다. 기업의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협업과 해외 진출에도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슈는 “모디슈머 열풍은 우리 사회의 메가트렌드로 자리잡았다”며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만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짜파구리의 핵심에는 ‘맛있는 짜장면’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짜파게티의 내력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짜장면에 대한 소비심리를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집에서 보다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만들어진 게 짜파게티다.
짜파구리를 완성하는 한 축인 ‘너구리’는 새로운 타입의 라면’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서 탄생했다. 기존 라면의 두 배 가까이 굵은 면발에 4~5분 정도 끓였을 때 맛을 구현해 내야 했다. 힘 있는 면발과 육수를 고루 흡수해 맛있는 라면을 만들어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너구리는 1982년 출시 2개월 만에 2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이듬해년에는 매출 150억원을 돌파하며 국내 우동라면 트렌드를 열었다.
농심 관계자는 “한때 드라마의 인기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치맥’ 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문화 콘텐츠를 통해 한국의 식문화를 알리는 것은 식품한류의 좋은 방법”이라며 “세계 각국의 거래선과 소비자들로부터 짜파구리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짜파구리의 열풍을 이어갈 수 있게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