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으로 ‘재난기본소득’이 부상하고 있다. 국민에게 현금을 주자는 얘기다. 그러나 정치권의 재난기본소득은 그동안 학계에서 논의된 ‘기본소득’과 다소 다르다. 기본소득은 주기적,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지만 정치권 주장은 한시적, 일부 계층에 지급하는 것이어서 일종의 ‘현금 수당’에 가깝다. 따라서 재난기본소득의 기간과 대상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실현 가능성과 효과는 달라질 전망이다. 다만 슈퍼추경까지 편성키로 하는 등 막대한 빚이 예고된 상황에서 정부가 당장 이를 도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현금 수당, 실현 가능성 크지만 한계 분명
기본소득의 특징은 5가지다. 주기적, 현금, 개인, 모두, 무조건 등이다. 이것을 고려하면 최근 정치권이 주장하는 재난기본소득은 본래 의미의 ‘기본소득’이 아닌 현금 수당을 의미한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1인당 50만~100만원, 일시적, 고소득층 향후 환수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 밖에 민주당 원외 후보들(1인당 50만원, 일시적, 고소득층 제외), 정의당(1인당 100만원, 일시적, 대구·경북지역), 원외정당인 시대전환(1인당 30만원, 2개월, 취약계층 1400만명), 이재명 경기도지사(대구·경북 우선 지급) 등의 주장도 유사하다.
현금 수당은 단기간 일부에게 현금을 뿌리는 것이다. 일시적이고 기본소득보다 재원 규모가 적어 실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정치권의 재난기본소득 규모는 약 5조~50조원이다. 기간과 대상을 좁히면 실행이 가능하다. 다만 빚을 내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건 부담이다.
현금 수당은 기본소득과 목표, 효과도 다르다. 일시적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소비 진작, 피해 지원 등을 추구한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일본에 있다. 일본은 1999년과 2009년 경기 불황 극복으로 실시했다. 1999년 저소득층에게 1인당 2만엔(약 22만원)씩 지역상품권을 지급했으며, 2009년 국민 1인당 1만2000엔(약 13만원)씩, 18세 이하 및 65세 이상은 1인당 2만엔(약 22만원)씩을 줬다. 당시 일본의 목표도 소비 진작 등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은 정작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을 했다. 따라서 재난기본소득을 현금 수당 방식으로 지급한다면 해당 기간에 소비를 할 수 있는 유인책 등이 병행돼야 한다.
기본소득, 재원 규모 커지고 부작용 우려
재난기본소득의 두 번째 방식은 주기적,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진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형태로 도입하면 현금 수당과 목표와 효과가 달라진다. 기본소득은 단기간 경기 부양보다 양극화 해소, 고용안전망 보완 등을 목표로 한다. 또 장기간 모든 사람에게 지급해 재원 규모는 당연히 커진다. 현금 수당보다 실현이 어렵다. 핀란드, 네덜란드 등 주요국도 아직 전면 도입을 못하고, 실험만 하고 있다.
재원 문제뿐만이 아니다.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과 충돌할 수 있다. 기존 복지 제도와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특히 빈곤층이 오히려 혜택이 적어질 수 있다는 점도 섣불리 시행하기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기본소득으로 받는 돈이 기존 제도로 받는 돈보다 적은 것이다. 그렇다고 빈곤층 혜택을 늘리려 기본소득 규모를 키우면 재원 조달 문제에 부딪힌다. 증세가 불가피한데, 이번엔 중위계층 이상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최한수 경북대 조교수의 기본소득 모의실험에 따르면 빈곤층은 복지혜택을 상실할 수 있으며, 기존 수준을 맞추려면 소득세율 인상 등이 불가피해 중위계층 이상 가구의 근로요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기본소득이 빈곤층 지원에 소홀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까닭에 청와대와 정부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정 당국 입장에서는 재난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다”고 완곡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청와대도 전날 “취지는 이해하지만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난기본소득 도입은 ‘현금 수당’으로 할지, ‘기본소득’으로 할지 명확한 논의가 필요하고 재원 확보 등 세밀한 설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현금 수당은 소비 진작 효과가 불분명하고, 기본소득은 기존 정책과의 충돌과 재원 측면에서 실행이 쉽지 않다. 포퓰리즘이 아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