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28)씨는 지난 4일 회사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회사에서 지난 2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재택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김씨와 몇몇 직원들만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김씨는 “출근 통보를 받은 어떤 직원은 실제 감기 증세를 보이기도 했고, 회사 근처에선 확진자가 나오기도 했다”며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출퇴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직장 내 감염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직장 감염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는 유연근무제, 탄력근로제 등 권고안을 내놓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발열이나 호흡기 유증상자를 중심으로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직장 내 감염과 관련해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가급적 출근하지 말아야 한다”며 “집에 머무르면서 증상 악화 여부를 관찰해야만 다중이용시설인 콜센터와 같은 사업장의 감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건 당국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온라인 및 재택근무를 적극 권장해 왔다.
직장 내 감염 사례는 이번 콜센터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과 26일엔 서울 용산과 을지로에 있는 대형 사무공간에서 확진자가 1명씩 나오면서 건물이 폐쇄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밖에도 지방의 민간 사업장에서도 소규모 직장감염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비교적 방역 수준이 높은 공공기관도 코로나19의 사정권에 들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줌바 댄스 수업에서 전염된 보건복지부 공무원도 같은 건물 근무자다.
전문가들은 민간 회사들이 재택근무에 지나치게 보수적이란 점을 지적한다. 확진자가 나오면 기업 입장에서도 업무가 마비되고 건물이 폐쇄되는 등 타격이 크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이런 사건들이 앞으로도 여러 곳에서 생길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직장에서도 자체적으로 휴가나 병가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웅 송경모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