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7000명을 넘어서며 한국의 확진자 수를 추월했다. 코로나19의 발원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치사율도 5%에 육박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과의 교류가 빈번하고 고령자 비율이 높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처럼 적극적인 진단 검사가 확진자 수 폭증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탈리아 보건 당국은 8일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 전국 누적확진자 수가 7375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 대비 1492명(25%) 늘었다. 지난달 21일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첫 확진자가 보고된 이래 하루 기준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사망자도 전날보다 133명(57%)이나 늘어 366명이 됐다. 치사율은 4.96%에 달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전세계 치사율(3.4%)보다 높다.
AFP통신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한국보다도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한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확진자 7313명, 사망자 50명으로 집계했다.
이탈리아에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는 이유로는 중국으로부터 노동자와 관광객 유입이 많은 국가라는 점이 우선 꼽힌다.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대부분 북부 롬바르디아주와 베네토주 등에 집중돼 있는데 이 지역은 패션산업의 중심지로 다수의 중국인이 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두 번째로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베네토주에서 최초 전파자로 의심받던 중국인 사업가 8명이 음성 판정을 받는 등 인과관계를 특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높은 치사율은 고령인구 비율 탓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65세 이상 노령층 비율은 23%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실제 이탈리아의 사망자 대다수는 63~95세 노령층에 집중돼 있다.
이탈리아 당국의 적극적인 코로나19 진단검사도 확진자 급증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난 2일 기준 중국 외 국가 중 이탈리아는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진단검사를 실시했다. 당국이 현재까지 검사한 인원은 5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극적인 진단검사를 두고 정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롬바르디아주는 극우 성향의 야당인 동맹당 소속 아틸리오 폰타나 주지사가 이끌고 있다. 주 당국은 무증상 접촉자들까지 추적해 적극적인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으로 구성된 집권연정을 이끌고 있는 주세페 콘테 총리는 롬바르디아 주정부가 과도한 진단 검사로 확진자를 늘려 위험을 부풀리고 정권을 흔들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집권 세력이 전염병 창궐의 정치적 책임을 덜기 위해 주 당국의 검사 기준을 꼬투리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비상이 걸린 이탈리아 정부는 밀라노, 베네치아 등을 포함한 북동부 16개주를 봉쇄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와 중부 마르케주에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를 발령했다. 이로써 여행자제 지역은 이탈리아 북부 3개주에서 5개주로 늘었다.
방역전문가인 박찬병 서울서북시립병원장은 “초기 대응 실패로 경증 환자들의 경우 역학 조사만으로 감염 경로를 밝혀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확진자가 집중된 지역이나 도시를 봉쇄해 다른 지역으로 더 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형민 정현수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