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발(發) 구조조정 ‘칼바람’이 재계에 몰아칠 조짐이다. 실적 부진에 신음하던 항공·유통 업계뿐만 아니라 중공업·정유·자동차 등 사업개편이 지체됐던 업종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휘청이고 있다. 1분기 실적발표가 본격화할 다음 달부터 인력 구조조정 결정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1위인 롯데쇼핑이 대형마트 백화점 슈퍼마켓 등 점포 200곳 이상(약 30%)을 폐점하는 방안을 발표한 후 유통업계 전반에 구조조정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는 16일까지 희망퇴직 접수를 받는다고 9일 밝혔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1.1% 급감했고 코로나19 여파로 1분기 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마트도 59개 점포를 정리하는 구조조정과 함께 인력을 재편하고 있다. 대형마트 1개가 없어질 때마다 협력사를 포함해 일자리 300여개가 사라진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항공업계는 가장 먼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대한항공은 3개월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임원 전원이 사표를 냈고 무급휴직을 10일간 시행 중이다.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 저비용 항공사들도 무급휴직을 시행했다.
감원 움직임은 다른 업계로도 확산하고 있다. ‘꿈의 직장’으로 불릴 정도로 높은 연봉(평균 1억3700만원)을 자랑했던 에쓰오일은 희망퇴직 실시를 검토 중이다. 지난해 정유 부문에서 영업손실 253억원을 내는 등 실적이 악화됐고 올해 전망도 좋지 않아서다.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현대제철, 만도 등도 희망·명예퇴직을 시행했거나 계획 중이다.
업계 내부에선 기업별 구조조정 발표가 다음 달부터 속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기업 간부 A씨는 “4월에 코로나19 피해가 반영된 1분기 실적이 발표되면 ‘악’ 소리 나는 기업이 많을 것”이라며 “지금은 무급휴직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며 몸부림치고 있지만 분기 실적 발표 후에는 기업 상당수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실적 발표 시점이 구조조정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사업으로 포트폴리오 개편이 필요했던 중공업과 자동업계에도 연착륙 없는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유통 관련 대기업 간부 B씨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채널 변화로 구조조정 요인이 누적된 유통업은 코로나19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며 “다른 업종도 코로나19 사태가 구조조정 폭탄을 터뜨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4대 대기업 임원 C씨는 “현 정부는 기업의 구조조정 수요를 최대한 억제하고 기업에 고용 창출을 계속 주문해왔기 때문에 기업이 쉽게 구조조정을 공표할 수 없었는데 코로나19 사태는 기업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구조조정을 결단할 수 있는 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다수의 국민이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에서 중소상공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대기업 임원 D씨는 “어려울 때일수록 각 기업이 유보금 등으로 최대한 손실을 메우며 버텨내야 우리 국민이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매출이 준다고 기업이 사람을 잘라내면 내수가 더 얼어붙으면서 우리 경제가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주화 문수정 안규영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