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 승부수’ 사우디가 당긴 오일전쟁 방아쇠

입력 2020-03-10 04:03
걸프 지역 육상 유전.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확산되는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증산이라는 오일전쟁 방아쇠까지 당긴 이면엔 석유 감산정책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사우디는 석유카르텔 조직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맹주로 1980년대 석유전쟁 이후 이른바 ‘마켓셰어’ 정책(시장점유율 최우선정책)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5년 전부터 이 정책을 포기하고 감산정책을 펼쳐 왔지만 원유가격 방어에 실패했다. 그동안 석유시장이 중동 산유국이 쥐락펴락하는 공급정책에 좌우됐다면 이제는 수요에 의해 공급이 끌려다니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전기차 개발 등 석유 의존도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미국의 셰일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야금야금 빼앗아 사우디의 하루 생산량은 1000만 배럴 밑으로 떨어진 반면 미국의 생산량은 1300만 배럴로 역전됐다.

DB금융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OPEC과 비OPEC 산유국 즉 OPEC+ 국가들은 지난해 12월 총회에서 올 1분기까지 2018년 10월 기준 산유량 대비 하루 120만 배럴(OPEC은 80만 배럴, 러시아 등 비OPEC은 4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을 추가 감산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자발적으로 40만 배럴을 더 감산하기로 했다.

그러나 회원국 간에는 감산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사우디는 당초 하루 감산 합의량 32만2000배럴보다 2.8배 많은 90만6000배럴을 줄였다. 반면 나이지리아 가봉 등은 오히려 생산을 늘리는 등 회원국 간 불협화음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OPEC 국가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5일 3월까지인 감산정책을 연장키로 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자 사우디도 4월부터 증산이라는 맞불을 놓은 것이다.

사우디의 정책은 시장점유율을 늘림으로써 러시아를 경쟁상대국에서 탈락시키려는 의도 외에도 미국에 대한 견제가 담겨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감산에 들어갈 경우 미국 석유회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더욱이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 에너지기업에 제재를 가한 데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치킨게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미국의 하이일드채권 시장에서 미국의 셰일오일업체 등 에너지 기업들이 발행하는 정크본드는 11%나 차지한다. 사우디의 증산 발표 여파로 채권 가산금리가 11%까지 치솟은 것은 이들 기업이 신용경색에 빠질 우려가 점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저유가를 기반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는 분석도 나오는 만큼 유가 하락에 덜 민감하다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사우디다. 원유 수출을 주업으로 삼는 중동 국가들은 원유 수출 단가가 재정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재정균형 유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사우디의 재정균형 유가는 60~70달러 선으로 추정되고 있어 유가가 폭락할 경우 사우디가 어느 선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이번 치킨게임 승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