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코로나 기세 꺾이자… 시진핑 ‘구국의 영웅’ 만들기 노골화

입력 2020-03-10 04:0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뉴시스

중국 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노골적인 ‘영웅 만들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는 ‘중국 정부가 시 주석을 코로나 퇴치전 영웅으로 묘사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정부 관리들과 관영 매체들이 시 주석을 전염병 재난에서 나라를 구하고 세계 각국에 신종 바이러스를 방어할 시간을 벌어준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묘사하면서 미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전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시 주석이 보여준 헌신은 그가 “국민을 항상 최우선 순위에 두는, 신생아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지난주 보도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인 후베이성 우한의 고위 관리는 지난 6일 주민들에게 시 주석과 당에 감사를 전하도록 하는 ‘감사 교육’ 캠페인을 지시해 논란을 빚었다. 이 캠페인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서는 “역겹다”는 글이 올라오는 등 엄청난 반발이 일었으나 모두 삭제됐다. 한 네티즌은 “국민은 아직도 지도자들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지도자들은 벌써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표할 것을 요구한다”고 비꼬았다.

WSJ는 시 주석 영웅화 작업에 대해 8만여명이 감염되고 3000명 이상이 숨진 코로나19 사태에서 시 주석과 중국 공산당이 바이러스 확산에 늑장 대처하고 뒤늦게 도시 전체를 봉쇄해 수억명의 이동을 제한했다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침묵을 지키고 방역 일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시 주석과 당에 대해 방역 대처 스토리를 재구성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매체들은 시 주석이 처음 전염병 대응지침을 발표한 시점을 1월 초로 거의 2주나 앞당겼고, 감염이 절정에 달할 무렵에는 시 주석 자신이 처음부터 직접 통제를 해온 것처럼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말 17만명의 당·정부 간부를 소집한 화상회의에서 “전염병 유행 초기부터 당 중앙은 고도로 주시해 왔다”며 “나는 매일 구두 지시 등으로 전염병 예방과 통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쏟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서는 시 주석에게 의사결정권이 집중돼 있어 정책토론이 실종되고, 관리들은 부정적 보고를 꺼리게 되면서 코로나19 사태 초기 부실한 대응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 주석은 특히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우한에서 새로운 폐렴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내용이 전해졌음에도 전염병에 대한 공식 언급 없이 미얀마 방문 등 공식 일정을 이어갔다. 그의 코로나19 관련 첫 번째 언급은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를 보고한 지 3주가 지난 1월 20일에 나왔다.

WSJ는 시 주석이 이후에도 전염병 통제 영도소조를 만들어 리커창 총리에게 총지휘를 맡기고, 관련 보고는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하도록 해 책임을 피해가려 했다고 지적했다. 공산당 이론지인 치우스(求是)는 지난 2월 3일 열린 정치국 상무위 회의에서 시 주석이 “나는 1월 7일 상무위 회의를 주재해 코로나19 예방·통제에 관한 업무지시를 했다”고 밝혔다며 연설 전문을 지난달 15일에 게재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초기에 알고도 대처를 못했다”는 초기대응 실패를 자인하는 자충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중국 국가보건위원회도 ‘1월 14일 내부 회의에서 시 주석의 지시사항을 논의했다’는 내용을 2월에 공개하며 시 주석의 ‘알리바이 입증’에 가세했다. 하지만 보건위 웹사이트에는 당시 내부 회의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았다고 WSJ는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