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4년 7월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났다. 일주일간 계속된 참사로 당시 100만명이 거주하던 로마는 절반 가까이 피해를 입었다. 당시 사람들은 평소 기행을 일삼았던 네로(37~68년) 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하고 자신만의 새 궁전을 짓기 위해 고의로 방화한 것이라고 믿었다. 실상은 소문과 달랐다.
교외 별장에 머물렀던 네로는 즉시 로마로 돌아와 진압활동에 나섰고 개인자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했다. 불길이 잡히자 네로는 자신의 궁전을 개방해 이재민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생존자들에게 식량을 배급했다. 원로원(Senatus)도 나섰다. 많은 의연금이 출연됐고, 지방귀족과 국민들도 호응했다. 네로를 폭군으로 평가했던 역사가 타키투스마저도 네로의 구조활동만은 칭찬했다.
코로나19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불과 두 달 만에 확진자가 7000명을 넘어서면서 대구·경북 지역은 패닉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거리는 텅 비었고 인적마저 뜸하다.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은 큰 타격을 입어 지역경제의 근간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리게 된다. 사회 지도층의 본보기(magnanimity)라고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권력, 재산,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에게는 도덕적 의무가 수반된다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한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인가. 벼랑 끝에 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돕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통계를 보자. 지난해 9월 말 업종별 저소득 자영업자 대출 비중을 보면 음식점업(16.0%) 소매업(13.2%)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서비스업 대출 잔액은 742조원으로 전 분기보다 22조7000억원 증가해 통계 작성 후 가장 컸다고 한다. 전례가 없는 자영업자의 대출 급증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대구·경북 지역의 음식점 및 소매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조기 극복하고, 민생경제 파급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그중에서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회복을 위해 긴급경영자금 융자를 2조원까지 확대하고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 지역에는 6200억원을 별도로 배정해 특별지원키로 했다.
민간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일부 건물주들은 ‘착한 임대인 운동’으로 임대료를 대폭 낮추어 자영업자를 응원하고 있고 상인들의 보답도 감동적이다. 대구 지역에서는 상인들이 스스로 가게를 닫아 확산을 방지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내고 배달만 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업도 나서고 있다. 삼성은 선도적으로 300억원 규모의 성금을 냈고 다른 대기업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전염병에 맞서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에 대한 성원도 줄을 잇고 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고통을 분담하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이 돋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경주 최부자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내려온 최씨 가문은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이었다. 그들의 가훈 중에서도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르침은 지금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다른 지주보다 훨씬 낮은 소작료를 받았고 흉년이 들면 소작료를 다시 낮추었다고 한다. 또한 마당에 큰 솥을 걸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밥을 제공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었다.
로마는 대화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원로원과 국민이 합심해 위기를 극복하고 그 뒤 역사상 유명한 평화시대(Pax Romana)를 열었다. 지금 코로나19 광풍도 언젠가 수습될 것이다. 코로나19의 아픈 경험이 지나간 기억으로만 머물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구성원 각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