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쓰레기를 돈으로 바꿔드려요”… 서귀포시, 환경시책 선도

입력 2020-03-09 18:31
제주도 서귀포시 동홍동재활용도움센터 내부. 쓰레기를 분류해 버리거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러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서귀포시는 2016년부터 관내 30곳에 재활용도움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장만 보고 와도 집안 가득 쌓이는 생활 쓰레기들. 버리는 것도 일이고, 버리는 데도 돈이 든다. 제주에선 2017년 ‘요일별 배출제’가 시행되면서, 요일에 맞춰 쓰레기를 내놓는 일이 진짜 ‘일’이 됐다. 이제는 사은품 하나를 받아도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제품을 고른다.

이처럼 돈이 들고 까다로워지는 쓰레기 배출 방식에 당당히 이의를 제기한 곳이 있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쉽게 쓰레기를 버릴까’ ‘어떻게 하면 재활용품을 많이 골라낼까' 공무원들이 팔을 걷어부쳐 고민한 곳. ‘환경시책 선도 1번지’ 제주 서귀포시를 찾았다.

‘편리한 일상’이 된 쓰레기 버리기

서귀포시는 2016년 조용한 실험을 시작했다. 중심가인 일호광장 주변에 있던 클린하우스 3개를 동시에 철거했다. 대신 공영주차장 한 켠에 창고 형태의 준광역클린하우스(재활용도움센터)를 짓고, 그 안에 시민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 불편해하거나 필요로 하던 요소를 하나둘 심어 넣었다.

그 후 4년. 호응이 가장 좋은 것은 빈병 보증금 반환과 캔·페트병 직접 처리기기다. 소주 100원, 맥주병 130원 등 공병 보증금이 오르면서 빈병을 돈으로 바꾸려는 시민들이 늘었지만 마트에서는 1인당 교환 갯수를 제한하면서 민원이 많았다. 이에 서귀포시는 재활용도움센터에서 갯수 제한없이 보증금을 즉시 돌려주는 시책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캔·페트병 기계도 전국에서 처음 설치했다. 캔이나 페트병을 기기에 넣으면 갯수당 점수가 쌓여 종량제봉투로 바꿔준다. 지난해 하반기엔 캔 4388㎏, 페트병 5871㎏을 판매해 얻은 219만원을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에 기탁하기도 했다.

소형 폐가전 무상배출 서비스도 서귀포시의 주요 배출 편의시책 중 하나다. 환경부의 폐가전제품 무상방문수거 서비스에 따라 소형 폐가전의 경우 개인이 5개 이상 모으면 지역 폐가전수집업체가 방문 수거한다. 그러나 개인이 5개를 모으기가 쉽지 않아 집에 쌓아두거나 따로 배출하려면 주민센터에서 배출 스티커를 구입해야 하는 부담이 뒤따랐다. 이 시책이 도입되면서 지난해 서귀포 시민들이 아낀 쓰레기 배출 비용은 5133만원에 달한다.

특히 폐농약 수거함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중 기온이 온화한 서귀포는 제주에서도 감귤 재배의 주산지다. 새 농약은 농협에서 받아주지만 개봉한 농약은 처리를 맡길 곳이 없었다. 재활용도움센터에 농약 수거함이 설치되면서 맹독성의 농약을 과수원 한 켠에 몰래 버리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행정은 수거한 농약을 타 지역 전문업체로 보내 일괄 처리한다.

녹색교육의 장, 재활용도움센터

행정은 바빠졌지만 시민들 일상은 편리해졌다. 물이나 음료를 먹을 때마다 나오는 캔과 페트병은 점수를 모아 종량제봉투로 바꾸고, 틈틈이 나오는 맥주와 소주병은 소소한 용돈벌이가 된다. 잔디나 텃밭에 뿌리고 남은 농약과, 튀김을 만들고 남은 폐식용유, 고장난 전기후라이팬이나 부서진 선풍기 등도 이제는 더이상 처치곤란 쓰레기가 아니게 됐다. 시민들은 손에 들고간 쓰레기가 돈이나 건전지, 휴지, 종량제봉투와 같은 가치있는 물건으로 돌려받는 과정에서 자원 순환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서귀포시가 추진하는 ‘별것 아닌듯한’ 시스템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추진된 사업이라는 점이다. 서귀포시는 ‘청정’과 ‘공존’이라는 제주도정의 기치를 시민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는, 작고 당연한 노력으로 지난해 국무총리 기관 표창과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받으며 전국 지자체의 모범이 되고 있다.

▒ 양윤경 서귀포시장
“쓰레기 처리와 자원화에 시민들을 어떻게 참여시킬까 고민”



“환경상태로 도시를 평가하는 시대잖아요. 쓰레기 처리와 자원화란 행정과제에 시민들을 어떻게 참여시킬까 깊이 고민했습니다.”

양윤경(사진) 서귀포시장이 2018년 부임할 무렵 이 도시엔 관광객과 이주민이 급격히 늘어 생활쓰레기 발생량이 매년 12% 이상 폭증하고 있었다. 양 시장은 지난 4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깨끗한 도시환경은 서귀포시가 갖는 최고의 자원”이라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서귀포의 청정 환경을 보존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화가 가능한 물건을 골라내는 작업이 절실한 시점에서 서귀포시는 시민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심했다. 그리고 ‘배출 편의’와 ‘보상율 제고’를 답이라고 판단했다.

양 시장은 “2017년 1월 도입된 제주도의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가 성과가 있었지만, 요일별 배출에 따른 불편함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서귀포시는 그로 인한 불편함을 덜기 위해 요일에 관계없이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재활용 도움센터를 전역에 설치하고, 배출단계에서부터 쓰레기와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철저히 분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시정의 초점을 맞춰왔다”고 했다.

이어 “시민의 참여를 높이는 것은 쓰레기 배출 불편을 최소화하고,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했을 때 최대한 많은 이익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며 “쓰레기 문제는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게 최대 관건인 만큼 앞으로도 자원화율을 높이기 위해 시민 편의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아 적극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양 시장은 “시민들이 청정과 공존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는 게 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맺었다.

제주=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