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만학도’ 이상숙(89) 권사는 따뜻한 인상에 눈빛이 또렷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강단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 그는 시종일관 스스로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권사는 지난달 24일 성공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우리 나이로 올해 90세인 이 권사는 대학원 졸업자 102명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성공회대 역사상 명예학위 취득자를 제외하곤 최고령이다. 이 권사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서울의 카페에서 지난 5일 만났다.
“1965년 주식회사 소예를 창업해 완구제품 등을 수출했어요.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터라 여성이 사업한다고 하니 미망인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죠. 구멍가게라는 선입견도 있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평소 사회가 왜 이런 방향으로 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사회학 공부를 하고 싶었죠.”
이 권사는 2018년부터 2년간 사회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힘들지만 재밌는 시간이었다. 학교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 강의가 없는 시간엔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작업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권사는 “공부하면서 제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배우게 됐다”며 “읽어야 할 책이 많아 소화하기 힘들었지만, 새로운 분야를 아는 기쁨이 있었다”고 했다. 이 권사는 박사과정 논문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 권사는 “40대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씩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지금도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며 “공부든 기도든 무엇이든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95년 기업체에서 물러난 즈음부턴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90~96년 숙명여대 동문회장,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부회장 및 국제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 권사의 마지막 활동은 통일운동이었다. 2011년부터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에 몸담았다. 상임위원장으로 국내외 많은 지역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데 이바지했다.
그는 어린 시절 목회자인 아버지로부터 나라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80년대 초반 삼각산기도원에서 나라를 위해 부르짖는 어머니들의 기도를 본 뒤 그들의 애절한 기도에 깊이 감동했다.
이 권사는 “저도 그분들을 따라 기도원에 다니며 나라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고 기도가 쌓이니 믿음이 단단해졌다”며 “하나님이 통일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그 기도를 오랫동안 해왔다. 통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만큼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서 결국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