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부흥에 무지하고 홀대하는 것이 개혁의 걸림돌

입력 2020-03-09 00:06
혜림교회 성도들이 2018년 10월 새성전 헌당 및 임직·은퇴 감사예배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혜림교회 제공

사전은 교회개혁을 ‘교회가 성경의 근본 혹은 원시적 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당면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교회를 변화시킴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교회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16세기의 교회 변화를 종교개혁 혹은 교회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신앙을 주장하던 중세 로마가톨릭에서 다시 성경의 본래적 교회로 돌아가게 했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신조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모든 교회개혁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성경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것

오늘날 교회개혁의 큰 걸림돌은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성경의 뚜렷한 주장과 교리를 상황이나 시대정신 혹은 인권 같은 논리를 내세워 받아들이지 않거나 비트는 것이 교회개혁을 막는 단단한 장벽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성경은 인간의 힘(과학 학문 인권 등)보다 그 권위가 낮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종종 성경은 안심하고 돌아갈 절대적 가치를 가진 경전이 아닌, 그저 좋은 말을 담은 소설 정도로 취급받습니다. 그들의 사역에서 자주 역사적 신앙적 교회개혁이 아닌 냉소와 허무함을 남기는 비꼬기, 비난하기 등의 모습만 발견하는 것은 그런 연유입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에 대한 무한 존중의 결과였습니다.

종교개혁에서 강조된 ‘오직 성경’은 전적으로 권위의 문제였습니다. 교황과 교회 전통이란 권위에 가려있던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키는 일이 종교개혁의 본질이었습니다. 개혁자들이 사용한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대표적 방법은 사람들에게 성경의 중심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구원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결과임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구원의 권위가 교황에서 성경으로 이전되게 했습니다.

성경해석 역시 같은 원리였습니다. 그동안 성경해석의 최종 권한을 가진 이는 교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전반의 진리를 통한 성경 해석을 주장함으로써 성경 해석의 권위를 교황에게서 성경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외침으로써 성경 해석의 최고 권위자가 성경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처럼 종교개혁은 부단히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힘쓴 역사였고 그것이 개인과 교회와 세상을 바꾼 기록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을 존중하지 않기에 말씀을 힘 다해 읽지도, 듣지도,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개혁을 주장하는 태도는 역사적 성경적 교회개혁을 가장 크게 방해하는 일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동상. 픽사베이

부흥에 대한 무지와 소홀함

교회개혁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걸림돌은 ‘부흥(Revival)’에 대한 무지와 기대 없음입니다. 비성경적이던 로마 가톨릭의 교리를 정리한 일과 교회와 사제들의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교정했던 일이 두드러졌기에 사람들은 16세기 종교개혁을 주로 교리적이고 도덕적인 변화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이 시대의 교회개혁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입니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리와 윤리의 변화만이 아니라 영적 개혁이요 성도 내면에 영향을 끼친 신앙적 변화였습니다. 중세를 휩쓴 흑사병과 가난 그리고 각종 유럽의 전쟁들(100년전쟁 후스전쟁 장미전쟁 등)로 인해 사람들은 불안과 영적 기갈 앞에 서 있었습니다. 중세교회와 냉랭한 스콜라주의는 교인들의 그런 영적 갈증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영적 기갈을 신비주의 성자숭배 성물숭배 같은 미신적 신앙에서 해결하려 했습니다.

종교개혁은 그런 영적 갈망에 부어진 생명수였습니다. 종교개혁은 교리 개혁만이 아니라 영적인 개혁 곧 부흥운동(Revival)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반대자들의 모진 박해에서도 힘을 잃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개혁자들과 성도들에게 영적 부흥운동의 형태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교조주의로 흐르지 않고 이데올로기화되지 않으며 나아가 개인에게 윤리적 변화까지 만들어낸 것 역시 그 안에 영적 부흥의 은혜가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교회개혁 운동이 유의미한 열매를 나타내지 못하거나 정치이념화되기 쉬운 것은 종교개혁 안에 담긴 부흥의 요소를 간과하는 것과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

2000년 교회 역사를 볼 때 1, 2차 대각성운동, 웨일즈부흥, 평양 대부흥운동 같은 부흥의 역사에서 현대의 교회개혁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교회와 성도의 윤리적·도덕적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부흥이 교회개혁의 중심이라는 사실의 방증입니다.

교회개혁을 외치지만 실패했다면 그것은 교회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정작 그 자신을 부흥의 은혜와 그것에 대한 갈망에서 제외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개혁주의 목사로 불리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늘 마음에 담고 살았던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Praying for revival)가 교회개혁을 가로막는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입니다.


김영우 목사<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