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22절에는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으로 코로 쉬는 숨과 영혼으로 쉬는 ‘말숨’을 생각해 보자.
우리의 숨을 묵상해 보자. 코로 쉬는 숨은 더 높은 차원의 숨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인이다. 창세기 7장 노아의 홍수 때 코로 숨 쉬는 모든 생명은 물에 빠져 죽었다.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과 동물만 살아남았다.
코로 숨 쉬는 모든 존재는 물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나면 빠져 죽는다. 성경은 코로 숨 쉬는 것들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생명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살았으나 죽은 자들이요, 기는 짐승이며 가축이자 물고기일 뿐이라는 말이다.
진정한 생명은 코로 숨 쉬는 것들이 아니다. 말씀으로 숨 쉬는 자들이 진정한 생명을 갖고 있다. 말씀은 결국 ‘말숨’이다. 말숨을 쉬어야 참 생명을 갖게 된다.
홍수 심판에서 물은 코로 숨 쉬는 생명을 죽였다. 반대로 방주에 탄 생명을 살렸던 것도 물이었다. 홍수 심판 때 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 앞에 코로 숨 쉬는 것들은 설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킬 육체도 없다. 단 한 명도 하나님의 심판 그물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물은 말숨 쉬는 자들, 다시 말해 말씀으로 호흡하는 자들을 삼키지 않았다. 말씀의 숨을 불어넣은 이들을 둥둥 뜨게 하셨다. 구원의 마른 땅도 밟게 하셨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두 번의 호흡을 받는다. 한 번은 태아가 엄마의 자궁 안에서 받는 호흡이다. 아기는 물속에서 지낸다. 폐에도 물이 가득히 채워져 있다. 아기는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다.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통해 배꼽으로 산소를 받는다. 거의 물고기와 같은 존재다.
열 달이 채워지면 아기는 두 번째 호흡을 준비한다. 좁은 자궁을 빠져나오면서 목과 폐가 눌리고 폐에 찬 물도 빠진다. 첫 울음과 함께 자신의 폐로 첫 호흡을 한다. 물고기 같던 존재가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신비롭게도 엄마 배 속에서의 첫 호흡은 물고기 호흡이다. 두 번째 호흡을 할 때 비로소 사람의 호흡을 하게 된다.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는 어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던지는 그물로는 물고기밖에 낚지 못한다. 예수님이 던지시는 그물이 돼야 사람을 낚을 수 있다.
“이전에는 네가 물고기를 낚는 어부였으나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던진 그물로는 생명을 지닌 사람을 건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코로 쉬는 호흡은 진정한 생명의 호흡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입에서 불어오는 말씀의 호흡이 우리 것이 될 때 코로 숨 쉬던 우리가 영으로 숨 쉬는 생명이 된다. 물고기였던 우리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사방 천지에서 숨이 몰려온다. 의식하지 않아도 그 숨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 숨을 통해 우주가 내 안에 들어오고 또 내가 우주에 속한다. 숨을 통해 우리 몸이 우주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사방 천지에서 모든 역사와 인생 속에 말숨을 불어넣으신다. 말숨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내 안에,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숨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가 말숨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것이다.
육체를 건강하게 하려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말숨을 얻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말숨이 될 때 몸과 영혼이 건강한 참된 생명으로 거듭하는 것이다. 오늘도 코로도 숨을 쉬지만 말숨을 함께 마시면서 영원한 생명의 호흡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