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1번 환자 발생때 신천지 전수조사 시행했어야”

입력 2020-03-08 18:09
홍윤철 서울의대 교수겸 WHO 정책자문관은 공공의료기관 중심의 국가보건위기 대응을 주문했다. 박태현 쿠키뉴스 기자

‘선방’에 가까웠던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방역 수준이 순식간에 역전됐다. 지난달 중순 ‘코로나19 종식’이 거론됐을 정도였지만, 현재는 발원지인 중국 다음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코로나19 방역 과정 중 가장 엄중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세계보건기구(WHO) 정책자문관인 홍윤철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9번(82세·남), 31번(61세·여)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달 16일과 18일 이후를 지목했다.

“제일 아쉬운 것은 29·31번 환자가 나왔을 때 지역사회 확산 차단시기를 놓친 점입니다. 신천지와 교회에 대한 전수조사를 그 때 적극적으로 시행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 교수는 “29·31번 환자가 나왔을 때 방역 적기를 놓쳤다”고 했다. 지난달 16일 확진된 29번 환자는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감염원을 알 수 없는 지역사회 감염자였다. 18일 발생한 31번 환자도 신천지 대구교회 신도로 대구·경북지역의 집단 감염사태의 신호탄을 알렸다. 그 당시 방역 대응이 한 발 늦었다는 게 홍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곧바로 전략을 강화시켜 주말 전 신천지 교회 등을 전부 관리를 했어야 했지만 시기를 놓쳤다”며 “감염병 위기등급을 높이는 것도 이틀 정도 늦어 감염위기 속 주말 예배가 진행됐고, 전국 각지로 바이러스가 흩어진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신천지 교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그때 했다면 폭발적 확산은 막았을 것”이라며 “신천지 협조가 늦은 점 등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일요일인 23일에야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기존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정부가 ‘중국인 전면 입국 차단’ 조치를 시행하지 않아 확산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중국인 입국 금지’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견해를 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특수성은 감염자의 많은 수가 신천지 교회활동과 관련됐다는 점”이라며 “지역사회 감염이긴 하지만 신천지 교회와 청도대남병원과 같은 특수 발생원이 존재한다. 다른 요인보다 이런 주요 발생원에 주목하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국인은 받고, 중국인만 입국 금지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지 여전히 의문”이라며 “초기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을 금지했다면 병이 안 퍼졌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신천지와 관련한 폭발적 발생이다. 그 전에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짚었다. 지금이라도 중국인 입국 차단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홍 교수는 “중국발 입국을 막아야만 지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태의 맥락상 맞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코로나19가 소멸하지 않고 계절질환이나 풍토병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참고로 풍토병이란 특정 지역에서 계속 유행하는 감염병을 말한다. 홍 교수는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코로나19를 적극적으로 막아서 완전 차단에 성공한다면 사스처럼 사라진 병으로 끝낼 수 있다”며 “풍토병 정착 여부는 방역역량과 국민 협조에 달려있고, 코로나19가 대거 발생한 인구집단에 있는 분들이 자가 격리를 잘 실천한다면 빨리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국내 감염병 대응과 관련한 촘촘한 시스템 마련도 제언했다. 그는 “메르스 당시에도 확산세가 끝나면 종식될 것처럼 보이지만 신종 감염병 사태는 되풀이 될 것”이라며 “이번에도 메르스 경험을 바탕으로 초기에 잘 버텼지만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부족한 점이 속속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촘촘한 대응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한다. 공공의료기관 중심의 국가보건위기 대응 능력을 기르는 일이 첫 번째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