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고난? 우리를 제자 삼으려는 선하신 ‘큰 그림’의 일부

입력 2020-03-06 00:05
게티이미지

가족과 친지의 때 이른 죽음이나 수술 실패, 과도한 부채와 장기간의 실업, 배우자 혹은 자녀와의 불화, 기도와 상담으로 극복하기 힘든 학대 경험, 세계를 휩쓰는 전쟁이나 전염병….

살면서 어느 하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다. 삶에는 역경의 목록이 이보다 훨씬 더 많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고난이 닥치면 ‘선한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분은 모든 어려움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고, 예방도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미국 심리학자이자 기독 상담가인 저자는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선한 것일까”란 질문을 던진다. 임상심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콜로라도 기독교대 연구교수이자 기독 상담단체 ‘뉴웨이 미니스트리’ 대표다. 50여년간 상담해온 저자는 내담자 중 상당수가 자신과 같은 궁금증을 품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건 믿음이 작아서가 아니다. 역경과 실패는 인생의 일부다. 저자도 70년 넘게 기독교인으로 살아왔는데도 하나님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적지 않았다.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독교인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천착하게 된 이유다. 책은 그 결실이다.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고 하나님은 침묵한다고 느껴질 때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3개다.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하나님 뜻을 입맛에 맞게 왜곡하기’ 또는 ‘전율하는 가운데 하나님 신뢰하기’다.

첫째는 성경 속 요나가 택한 선택지다.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 마음에 들지 않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망쳤다.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은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로마 시민권자인 엘리트 유대인 사울은 구약의 메시지를 왜곡했다. 유대교만 진리요, 이방인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가짜 복음’을 신봉하며 기독교인 핍박을 합리화했다. 하박국 선지자는 세 번째 길을 택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 성마르게 화도 내지만, 자신의 최선을 내려놓고 그분의 선한 뜻을 신뢰하기로 한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주 하나님은 내 힘이시다.”(합 3:17~18·새번역)

어떤 재난 질병 역경이 닥쳐도 하나님이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데는 충분히 전율할 수 있다. 하지만 신뢰는 또 다른 문제다. 저자는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계 21:3)는 예수의 약속에 근거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자고 강조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성경에 세 번째 길을 택한 선례가 꽤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모세 한나 에스더 예레미야 바울 예수가 그랬다. 최악의 상황에도 시야 너머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신뢰하며 나아갔다.

저자는 수시로 “하나님이 인생의 어려움을 막아주지 않는다”고 상기시킨다. 동시에 “하나님은 고난을 진득하게 견디며 그분이 약속한 영원하고도 완전한 기쁨을 기다리도록 우리를 돕는 ‘선한 일’을 행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를 ‘작은 그리스도’로 빚어가기 위한 그분의 선한 뜻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암 투병 중인 심리학자는 마지막까지 외친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전율하고 신뢰하라!”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