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됨에 따라 한시적 전화 상담·대리처방이 허용되자, 의료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는 국민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전화 상담·처방 및 대리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골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경우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전화 상담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화 상담·대리처방은 이미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한 차례 실시된 적이 있다. 당시 건국대학교병원과 강동경희대학교병원 등에 대한 코호트격리 조치가 발효, 외래 및 입원 환자의 불편이 커지자, 전화 상담·처방 및 대리처방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국립대병원장들과 방역당국 사이에 일정 부분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만성질환자들이 코로나19의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고 의료기관 방문을 꺼려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 우려를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 제도”라며 “가벼운 감기 환자 등도 전화 상담을 통해 선별진료소에 방문 여부 등을 상담 받을 수 있고 의료기관도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료 시기는 코로나19의 전파양상을 봐가며 결정하기로 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등은 정부의 발표 다음 날인 전달 25일부터 전화상담 및 대리처방을 적용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경우, 초진 환자부터 진료를 실시, 일평균 200~300명의 환자를 상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하자 외래진료를 중단하고 응급실을 폐쇄한 은평성모병원은 하루 500명 정도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외래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자에 대한 의료공백을 보상하는 정책”이라며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한의계도 환영의 뜻을 보였다. 최혁용 한의협 회장은 “방역 당국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병원 감염 근원을 차단할 수 있는 ‘전화·처방 등 허용방안’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한의협 관계자는 “기존 방문 환자들이 코로나19 감염의 우려가 있어 전화 상담을 요청하면 받아들일 것”이라며 “첩약은 택배 발송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크게 무리가 없지만 초진 환자는 개인정보와 함께 정확한 질환 파악이 어려워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감염 예방을 위해 선별진료소 운영, 발열 감지 시스템 도입 등을 실시하는 상황에서 과연 또 다른 정책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정부 지침이 내려와도 바로 시행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아직 환자가 여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내원 시기를 뒤로 미뤄달라고 안내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환자가 직접 오기 어려울 때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대신 처방받도록 한다. 온라인을 통해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있으니 대리처방도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전화 상담·처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의협은 “대면 진료의 원칙을 훼손하는 사실상의 원격의료로 현행법상 위법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전화 상담 및 처방은 한계가 있다. 환자의 진단을 지연하거나 적절한 초기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할 위험성이 있다. 일방적으로 발표한 전화 상담 및 처방 허용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에서 대구시의사회는 전화 상담과 대리처방을 허용하자고 회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대구시의사회는 “전화 상담과 대리처방은 한시적·제한적 방안이며 우리 회원들의 감염 위험과 격리·폐쇄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임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대구시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의 지부이며 대한의사협회와 뜻을 함께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기준으로 정부가 조사한 의료기관 중 상급병원은 42개 중 21개, 병원급 의료기관은 169개 중 94개, 의원급 의료기관은 1492개 중 913개가 참여 의사를 밝혔거나 참여하고 있다. 의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의료기관에서 전화 상담 및 대리처방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대다수 의료기관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노상우 쿠키뉴스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