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경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토를 요청한 지 불과 1주일여 만에 마련됐다. 급하게 만들어진 만큼 세부 대책 곳곳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또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10조원의 ‘나랏빚’을 더 지게 됐다. 추경이 효과가 있어 경기가 살아야 재정건전성 악화도 막을 수 있다. 정부에는 효과와 재정건전성이라는 두 가지 숙제가 떨어진 셈이다.
메르스병원도 아직 못 세웠는데…
정부는 추경에 감염병 대응과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사업들을 담았다. 하지만 상당수가 장기 대책 성격에 가까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내놓은 대책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호남권에만 있는 감염병 전문병원을 영남권과 중부권에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당면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규모 음압병동을 갖춘 병원을 실제 짓는 데 최소 3~4년이 걸린다. 정부 관계자는 “신종 감염병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감안해 하루라도 빨리 짓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추진해온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사업은 5년째 표류(국민일보 2020년 2월 3일자 1면 참조)하고 있다.
정부는 질병관리본부 내에 신종 감염병 연구를 전담하는 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한 예산도 추경에 담았다. 이 역시 당면한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이번 추경의 핵심인 소비 진작책도 찬찬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정부는 저소득층이나 아동 양육 가정,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 중 희망자에 한해 4개월 한시적으로 지역사랑상품권을 쿠폰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사랑상품권은 유통기한이 5년짜리다. 4개월 안에 소비하라는 정부 의도와 달리 추후 사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셈이다. 또 상반기 중 대규모 세일 행사 ‘대한민국 동행세일’을 열겠다고 했지만 빠른 시일 내 코로나19 종식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조치는 되레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나랏빚 10조↑, 효과 없으면 재정 부담
정부는 이번 추경에 쓸 돈을 ‘나랏빚’으로 마련한다. 지난해 쓰고 남은 여윳돈이 없어 10조3000억원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한다. 나머지는 한국은행잉여금(7000억원)과 기금여유자금(7000억원)으로 채운다.
추경 전에도 정부는 올해 나랏빚을 많이 늘릴 계획이었다. 올해 512조3000억원이라는 슈퍼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적자 국채를 60조2000억원 발행한다. 지난해부터 경기 부진이 심각해지자 무리해서라도 올해 정부 돈을 많이 투입키로 한 것이다. 경기가 살아나면 다음 해부터 다시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국가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세금도 잘 걷히고, 빚이 많아도 국내총생산(GDP)가 늘어 국가채무 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정부 계획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추경으로 연초에 10조원의 빚을 더 지게 됐다. 이로 인해 계획보다 재정건전성은 더 나빠진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9.8%에서 41.2%로 증가한다. 재정건전성지표인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의 GDP 대비 비율은 -2.1%,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사회보장성기금수지)의 GDP 대비 비율은 -4.1%까지 떨어진다. 모두 외환위기였던 1998년 이후 가장 낮다.
결국 생각보다 빚이 더 늘면서 정부의 부담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추경이 효과를 발휘하고 경기가 살아야 내년 이후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다.
세종=전슬기 이종선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