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정부 대책에 대한 국민 인식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는 부정적, 진보는 긍정적으로 이분화됐다. 전염병은 과학의 영역인데 선거를 위한 진영논리가 개입했고, 여론마저 정치화시켰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에 정치가 끼어들면서 국론만 분열됐다는 비판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4일 발표한 ‘코로나19 한 달여 국민여론’ 조사(지난 2월 25~28일 전국 1000명 대상 설문)에서 ‘중국 전역 입국제한’ 대책은 진영논리가 확연히 드러난 사안으로 꼽혔다. 보수 성향 응답자 53.4%는 ‘편익이 크다’는 의견에, 진보 성향 응답자 39.5%는 ‘손실이 크다’는 의견에 지지를 보였다. 중도 성향 응답자 중에선 45.3%가 편익이 크다는 의견에, 17.4%가 손실이 크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중도 성향 응답자가 편익 쪽에 기울면서 전체 의견은 편익이 크다(44.2%) 쪽이 우세했다. 연구팀은 “감염병 대응대책에 정치 성향이 개입한 지점”이라며 “협력적인 위기대응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전염병 대책에 대결 형태의 여론이 형성된 건 정치권 탓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부는 중국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해 “부정적 효과가 크다”(지난 1월 23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고 했다가 ‘후베이성 입국 금지’로 일부 선회하는 등 오락가락 대응 논란을 자초했다. 보수 야권은 “중국 눈치 보기에만 급급”(유기준 의원) “청와대가 폐렴 확산 차단보다 반중 정서 차단에 급급”(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그 틈을 노렸다.
원외 세력까지 끼어들며 ‘편 가르기’는 심화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중국에서 유입된 확진자들이 병을 퍼뜨렸다면 어디서 확진자가 제일 많이 나왔을까. 인천 차이나타운, 서울 대림동, 신도림동인데 거기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며 “(정책을 비판한) 권영진 대구시장이 코로나19를 열심히 막을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했다.
마스크 대책도 정치 쟁점화가 됐다. 정부의 마스크 수급 관리 차질에 대한 비판에까지 중국이 등장했다. “중국에 마스크 200만개 왜 보내나”(조경태 의원), “우리 마스크를 중국에 다 줘버리고, 마스크를 뺏긴 서러움은 국민 몫이 됐다”(황 대표) 등의 발언이 나오는 식이다.
그러는 사이 혐오가 번졌고, 찬반 입장을 지닌 여론이 서로에 대해 분개하는 여론전이 펼쳐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확전된 양측 세 대결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중국 대통령을 보는 듯하다’며 올린 탄핵 촉구 청원은 이날 현재 146만명을 돌파했고, 그에 대응해 ‘밤낮없이 노력하신다’며 올린 응원 청원은 124만명까지 증가했다. 중국 전역 입국제한 조치의 실효성이나 마스크 수급 대책 방안은 논의의 장에서 사라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이 감염병 사태를 철저하게 선거정치에 이용하고 있다.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영역에서 진영논리가 끼어들어 여론마저 정치화됐다”며 “정치에서 합리성, 상식, 대화 이런 게 실종됐고 ‘편 가르기’식 패싸움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