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소중한 혼자만의 장소가 있어/ 아직은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나의 비밀정원.”
음식평론가 이용재(45)는 ‘조리 도구의 세계’를 쓰면서 걸그룹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가사를 자주 곱씹었다고 한다. 책을 만드는 게 비밀정원을 일구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져서였다. 실제로 그의 신작은 비밀정원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희한한 조리 정보가 한가득 담겨 있다. 미리 말하자면 요리를 향한 객쩍은 감상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콤팩트함에 초점을 맞췄다”는 저자의 소개처럼 각각의 조리 도구가 어떻게 작동하고, 도구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인지만 정갈하게 담아낸 신간이다.
첫머리에서 저자는 “책의 의도와 관련해 두 가지”를 미리 밝혀두었다. ①좁은 공간과 넉넉지 않은 예산 안에서 도움 되는 도구를 고르는 요령을 담는 데 주력했다. ②조리 생활에서 일회용품의 지분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즉, ①번을 통해 우린 이 책의 타깃이 1~2인 가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②번에서는 저자의 유연한 사고를 엿보게 된다. 예컨대 그는 위생을 위해 일회용 종이 행주를 쓰는 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조리 도구는 인간의 손이다. “도구는 손의 연장이 되려는 염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손을 적극적으로 쓰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조리를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도구를 손의 확장 수단으로, 달리 말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이 조리 도구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각종 주방용품과 관련된 정보를 간단없이 늘어놓는다.
저자가 주방사우(廚房四友)라고 일컫는 도구는 타이머, 저울, 온도계, 계량컵이다. 이 중 타이머는 스마트폰의 시대에 별무소용의 존재로 여겨지기 쉬운데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타이머는 스마트폰이 갖지 못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타이머의 화면과 버튼은 크고 조작은 직관적이다. 디자인도 “최소한의 미학”을 견지하고 있어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가격도 저렴하다(2000원대 타이머도 많다).
저울은 “조리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저울을 고를 때는 영점 조정 기능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영점 조정 기능은 말 그대로 저울의 수치를 ‘0’으로 다시 맞추는 기능으로, 식재료가 담긴 용기 무게를 빼주는 식의 역할을 한다). 저울을 살 때는 최대 측정 단위가 넉넉잡아 5㎏은 되는 걸 고르는 게 좋다.
이처럼 요긴한 정보는 각 챕터마다 빽빽하게 실려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도구는 칼일 것이다. 책에는 “칼 한 자루만 잘 갖춰놓으면 초보자의 성장통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가장 안전한 칼은 역시 잘 드는 칼이다. 칼이 잘 들어야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칼이 미끄러지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드는 칼엔 베이더라도 “상처가 깔끔하게 나서 빨리 낫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칼이 잘 드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무를 썰어보는 것이다. 두 손으로 힘주어 눌러야 한다면 좋은 칼이 아니다. 자른 면은 직각에 가까워야 한다. 칼을 고를 때는 손에 쥐고서 무게와 균형을 가늠해보는 게 좋다. 칼을 한 자루만 사야 한다면 칼날의 길이가 20㎝ 안팎인 걸 골라야 한다. 짧으면 한 번에 자르지 못할 수 있고 길면 다루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칼의 짝꿍이라고 할 수 있는 도마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크기, 두께, 무게, 재질감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도마를 사용할 땐 물에 적셔 짠 행주를 도마 아래에 깔아놓아야 칼질에 도마가 휩쓸리는 걸 막을 수 있다. 저자는 이 과정이 “본격적인 조리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전기 주전자, 에어 프라이어, 토치 등은 물론이고 주방 세제나 수세미와 관련된 내용도 담겨 있다. 구글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가 한두 개가 아니다. 저자가 조리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면서 직접 체득한 것들이니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다. 조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읽기 바란다. 당신 주방에서 요술봉 같은 역할을 해줄 테니까 말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