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 하이파에 있는 어린이집 6곳은 늦게 자녀를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지각하는 부모는 평소보다 두 배나 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늦더라도 벌금을 물면 되니 “윤리적 의무감”이 흐릿해진 것이었다.
#2. 미국 보스턴 소방대원들의 병가는 월요일과 금요일에 몰려 있었다. 이런 사실을 괘씸하게 여긴 소방청장은 유급 병가를 연간 최대 15일로 제한했다. 대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듬해 대원들이 신청한 병가 일수는 전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엔 무더기로 휴가계를 제출하기도 했다. 모욕감을 느낀 대원들이 제도를 남용하는 방식으로 청장의 결정에 응수한 셈이었다.
이 같은 사례들에서 보듯 세상엔 벌금이나 보너스 같은 제도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이라는 엉터리 명제를 바탕으로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덕경제학’은 사람들이 감시나 벌금 없이는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들려주는 책이다. 보상이나 처벌과 관련된 제도가 “불쾌한 정보”로 둔갑해 시스템을 결딴내거나, 도덕적 판단을 흐려놓은 사례가 실려 있다.
저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오랫동안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이탈리아 시에나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새뮤얼 보울스(81·사진)다. 2006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명성이 대단한 인물이다. ‘도덕경제학’은 저자의 연구 성과가 집대성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덕적이고 시민적 덕성을 갖춘 개인”이라는 전제를 염두에 두고 각종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마도 책의 주제를 함축하는 문구는 부제인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는가’라는 문장으로 갈음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어판 서문에는 저자가 한국 독자에게 띄우는 편지가 실려 있다. 그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적었다. “도덕적 원칙들이 배양되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변모함으로써 과연 정치적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도덕적 임무를 수행해낼 수 있는 체제가 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입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