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들어 가장 인상 깊었던 뉴스 중 하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홍 부총리는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내용을 설명하다 목이 멨다. 그는 “방역 없이는 경제도 없다. 제일 좋은 경기 개선 대책은 사태를 하루빨리 종식시키는 것”이라며 “확진 환자도 꼭 이겨내셔야…. 지금 어려운 소상공인도 더 버텨야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며 울먹였다. ‘꼭 이겨 내시라. 버텨 달라’는 홍 부총리의 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가장 인상적인 정부의 메시지였다.
코로나19에 따른 재난 상황이 더 처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약자들이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큰 기업들은 연간 단위 계획을 세우고 미리 몇 년을 내다보는 운영을 한다. 일시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그 상황을 버텨내면 이를 만회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재난 상황이 지속될 때 자금력 등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무너진다. 더 이상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이 잃은 이윤은 재난을 버텨낸 큰 기업들이 차지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제부총리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버텨 달라’는 당부를 전달하다 목이 멘 것이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간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도 우리를 퍽 안타깝게 한다.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사회적 관계가 적은 고립된 사람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국가나 지역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했던 이들이 개개인의 선택과 대응으로만 버텨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이들의 고통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엔 다른 이들과 얼굴을 맞대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약자들이 적지 않다.
서울 구로구에 홀로 살던 A씨(65)는 지난달 말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옆집 지인이 며칠간 왕래가 끊기자 문을 열고 들어가 발견했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했던 그는 그나마 가까운 동네 복지관을 자주 다녔는데 복지관이 코로나19 사태로 폐쇄되자 “답답하고 우울하다”고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에 꼬박꼬박 보도되지 않지만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서울 지역 복지관과 경로당 3500여곳은 지난달 21일부터 모두 휴관에 들어갔다. 독거노인 대상의 방문 상담, 재가복지 서비스도 대부분 중단되고 있다. 경제·사회적 활동이 단절된 노인들은 주로 집에 머물며 혼자 시간을 보낸다. 방문서비스 중단을 통보받은 이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며 지역 복지센터 등에 “보호사 돌봄이 절실하다. 제발 보내 달라”고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비난하기도 어렵다. 직접 접촉 자체를 최소화하는 게 기본적인 방역 대책인 데다 복지 담당 공무원들도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대거 투입되면서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어제는 사무실에서 경남 지역 한 동사무소의 복지 담당 직원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몇 년간 시험준비를 한 끝에 지난해 채용됐는데 최근에는 기본 업무에 코로나19 방역과 의심환자 관리 등의 업무가 추가돼 매일 새벽 2시가 넘어야 일이 끝난다고 했다. 평일에는 잠이 부족해 출퇴근하는 대신 그냥 차에서 잠을 잔다며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취재를 할 터이니 소속 등을 정확하게 알려 달라고 하니 그는 “대구에 계시는 분들은 훨씬 더 힘들겠죠?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한마디를 더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늦었지만 지면으로나마 하려 했던 한마디를 전해주고 싶다.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응원합니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