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여행업계가 역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외국인의 국내 여행에 이어 한국인의 해외여행까지 막히면서 출구가 안 보이는 암담한 상황에 직면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 중소 여행사들의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4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업계 1위인 하나투어의 2월 해외여행수요(항공권 판매량 13만7000명 제외)는 약 4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4.8% 감소했다. 중국과 일본은 전년 대비 95% 이상 감소했고 유럽, 남태평양, 미주 등의 장거리 지역은 전년 대비 절반 정도의 수준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에도 약 18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9.7% 감소했다.
업계 2위인 모두투어도 코로나19에 대한 우려와 불안심리로 여행상품판매가 77% 하락하며 여행수요가 크게 위축됐다. 모두투어는 2월 3만7000명의 해외여행(호텔 및 단품 판매 포함)과 9만4000명의 항공권 판매를 기록했다. 지난달 모든 상품판매를 중단한 중국을 비롯해 일본과 동남아 등 단거리 여행지의 하락폭이 크게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일본 대체 여행지로 부상하며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던 동남아가 70% 넘는 하락세를 보인 것이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장거리 여행지인 남태평양, 유럽, 미주 또한 10%에서 30%대 하락세를 보인 가운데 코로나19 미발생지역인 뉴질랜드, 사이판, 터키 등은 여행객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업계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부터 2017년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과 홍콩 시위 등 크고 작은 악재가 이어져 온 데다 코로나19가 덮치며 ‘미증유의 위기’를 맞았다.
이에 여행사들은 주 3일제 근무, 유급휴가에 더해 무급휴가까지 동원하며 코로나19 극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나투어는 3월부터 5월까지 전 직원 대상 주3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모두투어도 3월부터 최대 두 달간 급여를 70%까지만 주는 유급 휴직을 실시중이다. 이마저도 어려운 영세업체들의 경우 직원에게 무급 휴직을 권장하거나, 퇴사를 권유하며 폐업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고려중이다. 여행사 관계자는 “입국을 막는 국가가 크게 늘어난 상태에서 여행사가 여행상품을 팔고, 고객과 상담하는 업무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그냥 문을 닫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 추정 결과 하나투어는 올해 1분기 영업적자 66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 132억원에서 적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됐다. 모두투어 역시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 91억원에서 올해 1분기 영업적자 68억원으로 전환할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의 관광사업체 등록 건수도 지난달 들어 역대 최저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진흥법 시행령이 해외여행 활성화를 이유로 국외여행업 자본금을 2009년 1억원에서 2016년 3000만원으로 크게 낮추면서 매 분기 등록이 늘었지만, 올해 1분기엔 감소가 확실시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여행업 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 동안 폐업한 업체는 50개에 달한다. 여기에 청산 사업자 반환 신고를 하지 않고 ‘조용히’ 영업을 중단한 업체를 더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폐업까진 아니더라도 휴업이나 휴직 조치를 하고 고용노동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여행업 사용자도 크게 늘었다. 지난 1월29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2224개 사업장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는데, 934개 사업장이 관광·여행업계 사업장이다. 한국여행업협회는 지난 28일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행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여행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고용노동부에 접수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진흥개발기금을 활용해 무담보로 제공하는 특별융자 500억원 신청에도 지원자가 줄을 잇고 있다.
여행업협회 관계자는 “메르스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며 “여행업체가 무너지면 항공, 호텔, 식당, 면세점 등에도 여파가 크게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