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사의 분쟁 없는 임금교섭 타결이 잇따르고 있다.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확산을 위기로 인식한 노사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한 결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은 노사가 4년 연속 논쟁 없이 임금교섭을 타결하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성금 2억원을 내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SK이노베이션 노사에 따르면 노사 대표는 2020년 임금교섭을 위해 지난달 17일 처음 만난 자리에서 30분 만에 잠정 합의했고, 같은 달 27일 조합원 대상 찬반투표에서 참여 조합원 84.2%가 찬성해 임금교섭이 타결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임금 인상률을 연동하기로 한 원칙은 4년째 지켜졌다. 확정된 임금 인상률은 0.4%로 2010년 이후 최저지만 노사가 정한 원칙을 지켜 소모적인 논쟁 없이 합의한 것이라고 SK이노베이션은 전했다.
이성훈 노조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신속한 협상 결과에 대해 “소비자물가 연동 임금 인상 원칙에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어지고 있고, 회사 실적이나 코로나19 상황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세계적 경기 하강에 코로나19 악재까지 겹친 상황에서 순조로운 임협 타결에 고무된 분위기다. 김준 총괄사장은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져 경영 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이런 혁신적 노사문화가 회사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제철 노사도 8개월가량 이어진 임금협상 합의안에 마침내 도달했다. 현대제철 노조는 2019년 임협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찬성 66.4%로 가결됐다고 이날 밝혔다. 합의안엔 임금 3만9000원 인상, 경영 성과금 150%+320만원, 연주공장 수당 1만원 인상, 냉연공장 수당 5000원 신설 등이 담겼다.
노사는 지난해 6월 상견례 이후 교섭을 이어왔지만 임금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커 지난해 10월 노조가 48시간 파업을 하기도 했다. 노사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코로나19 확산으로 향후 경기 전망이 비관적이고 장기간 협상으로 양측에 피로감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악화가 두 기업 협상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업이든, 노조든 코로나19 상황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수준으로 예측하기도 한다”며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없다는 인식, 노사가 이 상황을 함께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고 전했다.
실제 임단협을 진행 중인 대기업 노사에 이런 협업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단협을 진행 중인 삼성그룹 한 계열사 노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달 중순 협상을 잠정 중단했다.
노조 관계자는 “코로나19 위기를 넘기고 난 뒤 협상을 해야 한다고 보고 미룬 상태”라며 “현재는 노사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서로 잘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