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모양 안 보이는 온라인강의… 방치된 청각장애 대학생

입력 2020-03-03 04:10 수정 2020-03-03 09:52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들이 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공과대학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입구에 ‘2일부터 가급적 방문을 자제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청각 장애가 있는 고려대 학생 이모(22)씨는 개강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대다수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수의 입모양을 보고 수업을 따라갔던 이씨는 2일 “모니터 화면의 입모양만 보고는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언제까지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학교 온라인 강의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대책은 ‘유튜브 자막을 활용하라’는 게 전부였다. 유튜브 자막이 허술하다는 걸 잘 아는 이씨는 학교 측에 대안은 없는지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속기 프로그램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주요 대학들이 대면 강의 대신 온라인 강의를 늘리고 있지만 청각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겐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내에서 소수인 이들은 국가적 재난 사태 와중에 학습권을 요구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그렇지 않고는 수업을 따라갈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성균관대 장애인권동아리 ‘이퀄’의 정상운(21) 회장은 “학교 측은 자막 변환 프로그램이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며 “자막 변환은 기본적으로 음성 인식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일상적인 대화라면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전공 용어 등은 엉뚱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그마저도 모든 온라인 강의에 적용되는 게 아니어서 청각 장애 학생들은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양대, 경희대, 세종대 등 주요 대학들은 청각 장애 학생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고 했다. 반면 연세대와 숭실대는 속기사를 고용해 학습 지원을 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청각장애 학생들의 수업 이해를 도와줄 보조인력의 배치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미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각장애 학생들은 별도의 도움 없이 온라인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학교 측에서 속기사를 고용해 수업 내용을 타이핑해주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