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시끄러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논란을 보면서 두 가지 경구가 생각났다. 오래전 미국 메이저리그 감독의 명언 “사람이 좋으면 꼴찌를 하게 된다(Nice guys finish last)”와 미셸 오바마가 말한 “그들이 저열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간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다.
전자는 사람이 착하기만 해서 독한 면도 없고 꼼수나 편법도 쓸 줄 모르면 시합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며 비례정당(미래한국당)을 만든 것은 분명 꼼수였다. 그런데 4·15 총선에서 이 꼼수에 크게 당할까봐 겁이 난 여권에서 똑같이 꼼수로 맞서려 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선출한 2016년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해 “그들이 저열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간다”고 말했다. 미셸을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하게 만들 정도로 멋진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선에선 저열하게 갔던(go low) 트럼프가 이겼다.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우리가 직접 (비례정당을) 창당하는 일은 분명히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윤호중 사무총장은 “외부의 연대 제안이 있다면 당 차원의 논의를 거쳐 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일부 시민단체는 진보진영 비례대표 후보들을 한데 모으는 방식의 비례용 연합정당 창당을 민주당에 제안했다. 민주당이 차마 직접 창당은 못 하겠으니 우회로를 택하는 것 같다.
원래 정치는 고상하기 어려운 법이니 특별히 더 환멸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태도는 유감스럽다. 상대의 꼼수를 결국 비슷하게 따라 한다면, 그래서 선거법 개정의 취지를 훼손하게 된다면 철저히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감염병 재난을 맞다 보니 정부의 대처를 두고도 극심한 진영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에 흠집을 내서 선거를 이기려는 쪽과,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음을 부각시켜 선거에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쪽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 보위의 충정이 지나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한 것도 정부가 너무 잘해서 그런 것”이라는 무리수도 나온다.
우리 사회에 ‘마니교’식 분위기가 팽배해 우려스럽다. 3세기 페르시아에 살던 마니는 현세가 빛의 힘(절대선)과 어둠의 힘(절대악)이 대결을 벌이는 전쟁터라고 설교했다. 이런 관념으로는 타협이 불가능하고 한쪽의 절멸만이 요구될 뿐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 때문에 이편저편으로 갈려 싸우는 것이 어떤 사람은 선하고 어떤 사람은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집단적 바름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매트릭스(도덕적 기반)의 사람들과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이 땅에 같이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유권자들이 진영에 얽매이지 말고 ‘누가 공익을 증진시킬 것이냐’는 판단 기준으로 공직자를 뽑기 바란다. 1980년대 뉴욕시장을 지낸 에드 코크는 유권자들을 만나면 “어떻게 지내세요(How you doin)?” 대신 “저 잘하고 있나요(How’m I doin)?”라고 인사했다. 지금 이곳의 공직자와 정치인들도 저렇게 매 순간 시민들로부터 나의 노력과 성과를 평가받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한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