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모디 총리 주도 시민권법 개정안, 힌두교·무슬림 유혈 충돌… 34명 사망

입력 2020-02-28 04:04
지난 24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시민권법 개정 반대 시위에 참가한 30대 무슬림 청년이 힌두교도 남성들에 의해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뉴델리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유혈 충돌로 27일까지 34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인도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주도하는 시민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유혈사태가 벌어져 최소 34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 인도 내 불법체류자 중 무슬림에게만 시민권 획득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법안 내용에 대해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찬반으로 나뉘어 대규모 충돌을 벌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도 방문 기간 소요사태가 발생한 탓에 모디 총리는 외교적 망신까지 당해야 했다.

타임스오브인디아와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뉴델리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유혈 충돌로 27일까지 34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는 대부분 24~25일 사이에 발생했다. 사태 초기 사망자 수는 10여명으로 집계됐으나 이후 시신이 발견되거나 중상자가 숨지면서 사망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인도에서는 지난해 12월 시민권법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한 이후 크고 작은 시위가 빈발했다. 개정안은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종교적 이유로 박해를 받아 인도로 넘어왔을 경우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독교와 힌두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등 6개 종교 신자에게 시민권 획득 기회를 부여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슬림은 시민권 부여 대상에서 빠져 있어 모디 정부의 힌두 민족주의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4~25일 인도를 방문한 게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집권여당인 인도국민당(BJP) 의원인 카필 미슈라가 대중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기간 동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서 “경찰이 시민권법 반대 시위대를 처리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를 떠난 직후 우리가 직접 저들에게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기점으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물리적 충돌이 본격화됐다.

소요사태는 힌두교도가 무슬림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무슬림 주택과 상점이 피해를 입었으며 최소 3곳의 모스크가 불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뉴델리 북동부 무스타파바드에서 무슬림 주민들이 짐을 챙겨 피난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힌두교도 군중은 행인에게 종교를 묻고 무슬림일 경우 집단 구타를 가했으며 무슬림 관습인 할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하의 탈의를 강요하기도 했다.

충돌은 중앙정부와 뉴델리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번졌다. 이달 초 열린 주의회 선거에서 BJP를 누르고 집권한 지역 정당 보통사람당(AAP)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BJP에 있음에도 경찰이 그들을 비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AAP 소속 아마나툴라 칸 의원은 “시위대가 총기를 사용하는데도 경찰관은 잡아가지 않았다”며 “또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미슈라 의원에게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BJP 측은 시위대가 AAP 당사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유포하며 AAP 측이 폭력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위 과정에서 인도 국내정보국(IB) 소속 운전기사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AAP 측에 책임을 돌렸다. 이에 AAP는 자신들의 건물이 시위대에 점거됐을 뿐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 IB 직원 사망 역시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