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돌봄, 서로가 나눠야할 짐이자 힘

입력 2020-02-27 18:08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저 사진 속 인물들처럼 아픔이나 돌봄의 문제를 마주한 이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전해줄 수작이다. 저자들은 “(이 책이) 기쁜 돌봄이 있는 사회라는 이상을 현실로 당겨오는 데 쓰일 도구를 담고 있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픽사베이

제목 이야기부터 하자. 새벽 3시는 많은 이들이 단잠에 빠져있을 시간이다. 한데 병상에 누워 있는 누군가에게 이 시간은 다른 의미를 띤다. 만약 당신이 몹쓸 병에 걸렸다고 가정해보자. 극심한 고통 탓에 잠에서 깼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비명을 지르고, 끙끙 신음 소리를 내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만 아픔은 그대로다. 천지간은 갑자기 사고무친의 세계로 바뀐다. 통증만큼이나 당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건 고통을 혼자서 걸머져야 한다는 가없는 외로움이다.

환자를 돌보는 이에게도 새벽 3시는 속수무책의 시간이다. 환자와 아픔을 나누고 싶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 간절한 위로의 메시지가 아픈 이에게 가닿길 바라지만 무력감만 곱씹게 된다. 즉,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아픈 몸들에게’ 혹은 ‘돌보는 몸들에게’로 바꿔 부를 수 있다.

책에는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들은 한국 사회가 질병, 돌봄, 노년의 문제를 각각 어떻게 대하는지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그런데, 저자 4명의 필력이 저마다 보통이 아니다. 첫머리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지금 아픈 이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 나이 들어가며 혹은 나이 들어가는 가까운 이를 보며 불안하고 겁나는 이들, 자신이 지나온 악몽 같은 시간을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려 애쓰는 이들에게 이 책이 약 상자였으면 한다.”


시민적 돌봄

‘새벽 세 시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이 기획한 작품이다. 저자들은 과거에 “아픈 몸”으로 살아봤거나, 현재도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 서점가엔 기구한 사연이 담긴 투병기나 돌봄 시스템 개선을 촉구하는 교양서가 수두룩하지만, ‘새벽 세 시의…’는 기존의 책들과는 결이 다른 책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아픔과 돌봄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선 전문가나 각종 매체가 돌봄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떠올려보자. 대다수는 제도를 정비해 사회 안전망을 튼튼히 하고 재원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귀결된다. 물론 이런 주장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하지만 먼저 제기돼야 할 목소리가 있다. 우리는 “제도적인 것이 해결되어도 남아 있는 몸의 고통”을 떠올리면서 “살아있음이나 인간다움에 대한 깊고 통렬한 질문들”부터 던져야 한다. 저자들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며 “아프고 의존하는 몸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의미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이렇듯 간단치 않은 주문을 설득력 있는 필치로 풀어낸다. 모두 6개의 글이 실렸는데, 가장 뾰족하게 느껴지는 챕터는 제일 먼저 등장하는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일 듯하다. 한국인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늙고 아프면 가족밖에 없다”고. 하지만 “좋은 죽음”을 조사하면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늙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 가족의 “독박 노동”이 돼선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인식은 공적 돌봄 시스템을 탄탄히 하자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우리네 공적 돌봄 시스템의 현실은 어떠한가.

돌봄 시스템을 둘러싼 상상력은 여전히 가족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요양보호사는 “효 도우미”로 불리고, 각종 정책엔 “가족 같은 돌봄”이라는 슬로건이 따라붙는다. 책에는 “우리에겐 ‘가족 같은 관계’라는 비유를 넘어선 신뢰와 돌봄이 오가는 인간관계의 새로운 양식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많은 관계들이 ‘가족 같은’ 관계로 불리는 사회는 정이 넘치는 사회가 아니라 상상력이 빈곤한 사회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우리가 취약할 때 바라는 모든 것을 욱여넣기보다, 가족 바깥에서도 그럭저럭 시름시름 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제도를 정비하자거나 관련 정책을 다듬자는 식으로 뻗어 나가지 않는다. 책에서 제시되는 해결책은 “시민적 돌봄”이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이 시민의 권리이고, 돌봄은 시민 모두의 일이라는 공감대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주장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저자들의 주장이 궁극의 해법이라는 데 수긍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일 테니까 말이다.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

다시 책에 담긴, “제도적인 것이 해결되어도 남아 있는 몸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아픔이란 무엇인가. 아픔을 언급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늙음, 낭비, 실패, 낙오, 장애…. 건강한 이들에게 끔찍한 아픔의 실체는 신기루처럼 여겨지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게 만드는 부분은 아픔의 정체를 뚜렷하게 드러낸 문장들이다. 예컨대 오랜 세월 척수매독으로 고생한 작가 알퐁스 도데는 저서 ‘고통’에 이런 글을 남겼다. “통증의 실제 느낌이 어떤지를 묘사할 때 말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는가? 언어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잠잠해진 뒤에야 찾아온다. 말은 오직 기억에만 의지하며, 무력하거나 거짓이거나 둘 중 하나다.” 도데의 글 외에도 아픔의 정체를 가늠하게 해주는 문구가 곳곳에 등장한다. “(아픔은) 몸 하나만 남게 되는 세계의 수축” “아픈 사람이 익혀야 하는 것은 시간 관리법이 아니라 시간 낭비법” “질병 그 자체는 예측 가능성의 상실”…. 그러면서 비슷한 이슈를 다룬 책들엔 무엇이 있는지 일별할 수 있게 해준다. 독자들은 행간 사이를 서성이고 책장 곳곳에 밑줄을 그으면서 “쉽게 아프고 늙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게 된다. 젊은 환자가 처한 신산한 현실이나, 치매 환자가 겪는 문제를 면밀하게 살핀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다. 우리는 모두 늙을 것이고, 아플 것이고, 죽을 것이다. 돌봄을 받고 돌봄에 나서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마주할 아픈 삶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다. ‘새벽 세 시…’는 이런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본 이들에게 요긴한 참고서가 될 만한 금주의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