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승무원이 입국 카드를 내민다. 이름과 나이, 연락처, 미국에서 머물 주소를 써 내려간다. 한순간 당혹스럽다. ‘섹스(Sex)’.
이건 또 뭔가. 대충하지 뭘 이런 사생활까지 꼬치꼬치 물어야 하는감. 투덜거리며 ‘주 3회’라고 적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슬쩍 눈치를 보더니 이렇게 적었다. ‘넌(None)’ 알고 보니 그는 신부였다. 주 3회라 적은 이는 목사였고.
25여년 전 국민일보에 게재된 가정 칼럼은 이렇게 시작됐다. 파격이었다. 독자들은 이런 칼럼에 환호했다. 구역 공과를 집어던졌다. 신문을 복사해서 나눠 읽었단다. 성경 구절도 있었으니까.
연재 칼럼들의 모음집으로 탄생한 책이 ‘여우를 잡으라’(두란노)였다. 책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지금도 집회 때 만난 이들이 그 책 이야기를 한다. 당시에는 가정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그것도 모두 번역서들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강단에서는 선교를 강조하면서 결혼과 가정 이야기는 대충 하고 끝났다. 결혼도 대충 해치웠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르고 대충 키웠다. ‘어쩌다’ 부부가 됐고 ‘어쩌다’ 부모가 됐다. 모든 게 대충이었다.
사람들이 우리 부부에게 제일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가정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우리 부부가 거꾸로 질문하는 게 있다. “기생충 중에서 기생충이 뭔지 알아요?” 얼른 대답을 못한다. “대충이에요”라고 말하면 웃는다. 그동안 ‘대충’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을 고생을 했다. 사흘이 멀다하고 싸웠다. 아내의 ‘대충’ 때문이었다. 아내는 정리정돈이 안 된다. 모든 물건을 대충 갖다 놓고 끝낸다. 대충의 아내에게 타일러 보고 고함도 지르다 성경을 들이밀었다.
“성경 좀 보자. 여기 본문을 들여다봐라. 예수님이 부활하시면서 그 바쁜 중에 세마포와 수건을 개켜놓고 나오실 이유가 뭐였겠냐. 당신같이 대충 사는 사람들에게 정리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깨우치신 거다.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다.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냐고?” 내 다그침에 열 받은 아내가 내게 들이민 것이 있었다. 이혼장이었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난 이때 내 아버지를 제일 많이 원망했다. 무슨 뚱딴지냐고? 아니 나를 장가보내려고 하셨다면 혼수품보다 먼저 본인들의 ‘결혼 노하우에 대한 걸 코치해 주셨어야지’ 하는 탓이었다.
‘대충(大蟲)’을 잡겠다고 나선 것이 가정 사역의 시작이었다. 누군가가 질기고 질긴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스스로 예방 백신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맨 먼저 시작한 것이 결혼예비학교였다.
‘영적 혼숫감을 장만하라’ 이 말이 먹혔다. ‘만남의 우물가’로 시작했다가 싱글들을 위해 ‘싱글벙글 세미나’로, 커플들을 위한 ‘연리지 세미나’로 분화됐다. 우리 부부가 중년이 되면서 ‘더 서드 에이지 세미나(The 3rd Age Seminar)’를 열었다. 아내의 유방암 진단 소동의 원죄 탓에 암 환자들을 위한 면역력 강화 프로그램도 생겼다. ‘아임 파인 생큐(I’m fine thank you)’ 지독한 불면(不眠)의 끝자락에서야 꿀잠으로 안내하는 ‘수면 세미나’가 열렸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개발한 것이 ‘이모션 코칭’이었다. 개발해 낸 예방 백신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교회보다 방송이 항상 먼저였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는 아예 ‘송길원 스페셜’로 가정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내는 SBS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해외 집회를 갔다 귀국하는 비행편에서 기내 TV를 뒤지다 아내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신기했다.
모든 것이 우연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고백할 수 있다. ‘우연’, 내가 풀지 못한 ‘필연’이었을 뿐이라고. 주님은 우리 부부를 그렇게 쓰셨다.
1992년 부산 재송동에서 문을 열었던 하이패밀리는 경기도 일산 시대를 거쳐 서울 양재동 그리고 지금은 경기도 양평 시대를 열었다. 2년 후면 30년이 된다. 30년이 되는 해에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한국교회로부터 독립 선언을 하는 일이다.
‘이제 저희보다 더 어려운 기관을 도와주십시오.’ 그게 하이패밀리의 성인식이라 여긴다. 30년 동안 이만큼 키워줬다면 자립하는 것이 후원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기관쯤은 이렇게 나서야 한국교회도 희망을 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양평에 마련된 부지 위에 숙소동 ‘잠자는 마을’을 건설하는 마지막 과제를 안고 있다. 찜질방 난민이 된 선교사들을 환대하고 싶다. 나아가 치유를 위해 찾아온 이들의 쉼터로 제공하고 싶다.
불면의 시대, 누구나 꿀잠의 축복(렘 31:23~26)을 누리게 하고 싶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설계를 맡았다. 운영 방식은 소유가 아닌 공유 형태다. 참여하는 교회·단체·가족이 100일을 쓴다. 하이패밀리가 100일을, 선교사들을 위해 100일을 나눠 쓰는 식이다. 새로운 모델로 또 한 번 최초에 도전하는 중이다.
나도 내 아버지처럼 반성문(글로 벌)을 써야 한다. 하지만 다음세대는 글로벌(global) 가정 사역을 펼쳐야 한다. 한국에서 개발된 가정 예방 백신이 동남아와 유럽, 북미주와 아프리카로 뻗어 나가는 일이다. 가정사역의 메카, 하이패밀리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