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자가격리 중 쓰는 칼럼

입력 2020-02-29 04:02

대구 지역을 하루종일 취재하고 서울행 KTX를 탄 23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경보가 ‘심각’으로 바뀌었다. 대구를 방문한 사람들은 2주간 자가격리를 권고한다고 했다.

나도 심각해졌다. 회사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명령도 아니고 권고한다고 했으니, 자가격리를 하지 않은들 정부도 나도 책임은 없다. 혹시나 회사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뒤늦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확진되기라도 하면 회사가 며칠 문 닫고 신문도 못 만들겠지만.

회사 폐쇄까지는 과하다 싶긴 해도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이 정도 오버는 필요하단다. 하긴 그 정도 조치가 없다면 웬만한 회사들은 직원에게 웬만하면 출근하라고 하지 집에 있으라고 하진 않을 터다.

재택근무를 하며 살펴보니 좀 혼란스럽긴 하다. 동네 주민센터의 마을도서관은 문 닫은 지 2주가 넘었다. 경로당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만약 확진자라도 생기면 책임자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방치했다고 온 국민의 비난을 받을 테니 문 닫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도 같다.

그렇게 위험하다면 사람 모이는 곳은 다 문을 닫아야겠지만, 식당 커피숍 슈퍼는 열었다. 열고 싶어서 연 게 아니다. 손님은 뚝 떨어졌지만 정부가 거둬갈 세금이 감면되지는 않는다. 아이들 마스크 살 돈이라도 벌려면 어쩔 수 없다.

개학은 미뤄졌는데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경로당에 못 들어간 동네 어르신들이 지하철 타고 다니시다 혹시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된다. 도서관 정도는 입구에서 손 소독하고 체온도 재고 마스크 쓰게 하면 문을 열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나도 장담할 수 없으니 누굴 탓할 순 없다.

만만한 게 스마트폰이다. 뉴스 댓글과 게시판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나 있다. 왜 진작 중국인을 막지 않았냐고 대통령을 욕한다. 중국 눈치만 보느냐, 왜 뚫렸느냐고 타박이다.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봐야 코로나바이러스를 귀국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당시로선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은 지금의 최선을 찾아야지. 바이러스와 싸우는 사람 등 뒤에서 자꾸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격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새 마크를 이리저리 돌리면 이만희가 된다느니, 신천지 건물이 야당 마크를 닮았다느니 말도 안되는 걸 끌고 와 멍석말이하듯 두들겨댄다.

다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보다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분인지 찾아내느라 바쁘다. ‘우리 편 때문은 아니다’라는 알리바이와 ‘니네 때문이야’라는 증거를 만들어내는 데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열심이다.

지하철 입구에선 한 노인이 “이 재앙이 다 대통령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작 그 어르신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대통령이 당장 물러난다고 해도 마스크 없이 입을 벌리고 있으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다. 혼란스럽고 답답하다.

이 와중에도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질병관리본부의 공무원들, 선별진료소의 의사들, 공항 직원들, 폭주하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바쁜 배달 기사들,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성도들의 안전을 살피는 전도사님 목사님 장로님 신부님,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들 돌보는 주부들, 마스크 쓰고도 사무실을 지키는 직장인들 덕분이다. 나 빼고 다른 기자들은 오늘도 위험한 현장을 다니며 소식을 전한다.

대구에서 만났던 시민들이 생각난다. “여까지 우예 왔는교”라며 기자를 반겨주면서도 “퍼뜩 취재하고 얼른 올라갑시더”라며 걱정해주고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손 흔들어주던 얼굴들. 생각난 김에 쇼핑 앱을 뒤져 마스크를 주문하고 배송지를 대구로 적었다.

노트북 앞에서 혼자 외친다. 코로나야 물러나라, 대한민국 파이팅!(우한도!).

김지방 미션영상부장 fattykim@kmib.co.kr